조 길 영 / 국회환경포럼 정책실장, 강원대학교 초빙교수, 울산대학교 겸임교수

조길영 교수의 녹색칼럼

구제역과 조류독감 그리고 인간의 성찰

 
지난해 11월29일 경북 안동의 돼지농장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의 창궐로 지난 1월24일 오전 현재 소 14만2천172마리, 돼지 238만3천251마리 등 우제류 253만1천531마리가 살처분·매몰됐다.

1월24일에는 김해의 한 돼지 농장에서도 구제역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제 전라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구제역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그 직접적인 피해액만도 2조 원 이상에 달하고 있다.  

어디 구제역 뿐인가. 조류 인플루엔자(AI)로 1월24일 현재 4개 시·도, 12개 시·군에서 34건이 발생해 500만 마리에 가까운 닭과 오리가 땅에 묻혔다. 설상가상으로 1월21일에는 강원도 강릉시 한 양계농가 닭들이 잇따라 폐사한 원인이 예방백신도 없고 치료법도 없는 조류결핵(avian tuberculosis)으로 밝혀졌다.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조류결핵 등 각종 가축 질병이 계속 번짐으로써 대한민국 축산업은 궤멸위기에 처해 있으며, 지하수 오염은 말할 것도 없고,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국민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런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 20세기 들어와서 인간은 육식위주의 식단에 중독되기 시작했고, 육고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고밀집 사육 방식을 불러왔고, 이것은 질병이 창궐할 수 있는 최적의 터전이 됐다.     

게다가 사람들은 가축을 더 빨리 더 크게 키우는 방법을 찾아냈다. 엄격한 밀집사육시설에서의 전통적인 곡물사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육자들은 도살장에서 나오는 골분, 혈액, 내장, 여타 단백질이 있는 폐사체가 뒤섞인 사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광우병 사태에서 확인했듯이, 소에게 소의 골분과 내장을 먹이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인간의 탐욕스러운 사육방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비타민 영양학의 전문가인 토머스 주크스(Thomas Jukes) 연구팀이 테트라싸이클린이라는 항생제를 옥수수 가루와 섞어 병아리의 사료로 사용한 결과 성장 속도가 25%나 높아졌고, 이후 송아지나 돼지의 성장 속도가 50%까지 빨라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폴 로버츠는 『식량의 종말』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가축생산자들이 수십 년간 저농도의 항생제를 남용한 결과 현재 전 세계 항생제 사용의 절반이 가축에 쓰일 뿐만 아니라,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신종 박테리아가 수없이 생겨났으며, 이런 내성 때문에 가축 생산자는 끊임없이 다른 항생제로 바꿔야 했고, 가장 흔하고 값싼 항생제는 내성 있는 식중독균 환자를 더 이상 치료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작금의 비극적 사태는 인간이 병원성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항상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반증하고 있다. 그것은 신약이 개발되기도 전에 새로운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공격이 시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항생제의 남용은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 전이되고, 이것은 병원균의 내성을 키워 엄청난 인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저명한 미래학자 제임스 캔턴은 21세기 인류를 위협하는 4대 요인 가운데 두 가지를 환경오염과 질병의 창궐이라고 했다. 세계은행은 인수(人獸) 공통 감염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하나만으로도 7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십 억 명의 인구가 직장에 나가지 못하고 국가간 이동을 못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수천조 원에 달할 것이다. 백신과 항바이러스 물질은 순식간에 동이 나고 세계는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세계화는 바이러스 침투를 초고속화·동시화하고 있다. 이제 질병으로부터 인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축 사육 및 식품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소비자들의 근원적인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국가는 항생제나 성장 호르몬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즉각 시행하고 획기적인 방역 및 검역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유엔과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국가간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하다.   [『워터저널』 2011. 2월호에 게재] 
 

조길영 공학박사
   - 국회환경포럼 정책실장
   - 강원대학교 초빙교수
   - 울산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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