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화 요인·발병 원인 혼동 말아야

‘아토피’복합적 원인에 의해 발병 

   
▲ 이성낙 가천의과학대학교 총장.
어린아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가 아토피를 유발한다는 내용이 TV 방송 매체를 통해 세상에 나오자 이른바 ‘과자의 공포’에 우리 사회가 다시 충격을 받았다. 자녀들의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엄마들이 ‘과자 NO! 아토피 NO!’라는 팻말을 들고 식약청 앞에서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아토피(Atopy)’라는 의학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심한 가려움증으로 인해 온몸의 피부가 성한 곳이 없는, 특히 많은 어린아이들이 고생하는 난치성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는 아토피는 그 병인(病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 내용을 집약해 보면 국내의 오염된 생활환경, 오염된 먹을거리 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캐나다, 미국, 호주 같은 선진국으로 ‘도피 이민’을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좌절감에 빠지고, 이런 현상을 이른바 ‘양극화’의 결과인 양 해석되기도 한다.

아토피라는 용어 자체는 1960년대에는 임상 진단 병명으로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만성 신경성 피부습진(chronic neurodermatitis)으로 불렸다. 1970년대 중반 경에도 국내에서는 오늘날의 아토피 질환은 별로 볼 수 없었고, 흔히 말하는 태열(胎熱)이라는 증상만 종종 있을 정도였다. 1970년 후반 무렵에서야 아토피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1980∼1090년대에 가끔 쓰게 되었다. 그만큼 아토피는 약 15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흔한 병이 아니었다. 오늘날처럼 너도나도 ‘잘 아는 병’이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비이성적인 우리네 언론 매체가 한몫을 한 듯싶다.

아토피는 대부분의 경우 피부관리만 적절히 해주면 치유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드물게 우리 피부과 전문의들에게 참담한 패배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어 ‘a-topos’에서 유래된 ‘Atopy’는 비정상적인(out of place)이라는 뜻과 함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니 만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건축 자재를 비롯한 오염된 주거환경은 물론 먹을거리가 아토피의 병인으로 집중 부각되고 있다. 

건축 자재에서 발암물질이 있고, 먹을거리에 불량·불순 첨가물이 있다면 마땅히 제거하거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차원에서 누가 그걸 탓하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염된 주거와 식생활 환경이 아토피를 악화시키는 요인일 수는 있지만, 아토피의 원인으로 일반화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따른다는 사실이다. 악화 요인과 발병 원인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특히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생활환경이 좋다는 스위스, 노르웨이, 캐나다에서도 아토피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토피는 하나의 특정한 원인 때문에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multifactors)인 원인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더욱 치료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아토피가 최첨단 면역학 분야의 연구 대상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질병 통계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대장암 발생 빈도가 뚜렷한 증가 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서구화된 식생활, 즉 예전에 비해 육식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으로 해석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아토피 피부병도 우리네 생활양식이 서구화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어쨋거나 이제 아토피는 우리사회가 풀어야 할 난제로 떠올랐다. 구미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앞장서 아토피 퇴치를 위해 체계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역시 정치성 규제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히 그리고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연구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어떤 행정 규제를 통해 아토피 문제를 풀 수 있었다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그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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