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자린고비 문화

   
▲ 이규용 환경부차관
대가족 중심의 농경사회였던 예전 우리 사회에서는 음식을 항상 넉넉히 장만하는 것을 미덕(美德)으로 삼았다.
그 당시에는 상물림이라는 것이 있어 집안의 윗어른이 식사를 마치면 여자들이나 아랫사람들이 이 상을 물려 남은 음식으로 식사를 하곤 했다.

이 때문에 윗사람은 으레 음식을 남겨 다음 사람이 먹을 수 있게 했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고 그렇지 않으면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많은 식구들이 모두 식사를 하려면 음식을 담당하는 안주인의 손이 커야 한다는 인습(因習)이 생기게 된 것이다.

대가족제도가 사라진 지금도 집들이나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가보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도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 민족의 정 많고 넉넉한 인심으로 인해 푸짐한 상차림 문화가 지속돼 온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식문화가 현재 음식물 쓰레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연평균 420만 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약 15조 원에 이른다. 이는 월드컵 경기장 70개를 지을 수 있는 금액이다.

쓰레기종량제,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지역 확대, 감량의무사업장 확대 등 여러 제도를 실시해 점차 감소되고 있지만 아직도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많은 양이다.
좁은 면적에서 조밀조밀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상당한 면적을 차지한다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그렇기에 음식물은 남기지 말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생긴 경우에는 재활용해야 한다. 물기를 제거해서 가축 사료로,발효시켜 퇴비로, 또한 메탄가스를 생성시켜 연료로 쓰는 등 다시금 자원으로 쓸 수 있다.

계속되는 장기 불황과 고유가 시대에 무분별한 과소비와 잘못된 식습관으로 환경도, 경제도 몸살을 앓고 있다.

한편 IMF 이후 젊은 세대에서는 '짠순이', '짠돌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현대판 자린고비가 생겨나고 있다. 예부터 자린고비는 대체로 인색(吝嗇)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판 자린고비는 '굴비 먹기 아까워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술 뜨고 굴비 한 번 쳐다보는'과거의 자린고비와는 다르다.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 쓴 물건은 재활용하는 등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끼는 절약정신이 깃든 신(新) 자린고비다.

이는 우리 식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남기지 않고 적당히 먹을 만큼만 준비하는 자린고비식 식문화야말로 쾌적한 환경을 만들고 건강도 지키며 가계부를 가볍게 만드는 일석삼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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