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크라빅 피플앤워터 회장

 International Seminar  선진국의 지속가능한 물관리 기술·정책 사례

 

“빗물유출로 열섬현상·해수면 상승 환경문제 심각”

도시화로 빗물침투율·증발률 감소, 극한 기후현상 유발…빗물배출구조 문제
70억명 세계인구 1인당 100㎥ 빗물 활용 시 물문제·기후변화 완화 가능

 

▲ 마이클 크라빅
피플앤워터 회장
Part 03. 슬로바키아의 빗물관리로 시원한 도시 만들기

이상기후 현상, 빗물 낭비가 주원인

슬로바키아는 과거부터 수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편으로, 일찌감치 ‘물’이 기후변화 문제의 본질임을 파악하고 15년 전부터 물의 ‘소(小)순환’에 집중한 결과 빗물관리 등 물순환의 중요성을 체득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 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유럽국가인 슬로바키아에서는 대표적 열대기후 국가인 인도에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고온 현상이 40일 간 이어졌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이러한 폭염의 원인으로 ‘빗물 낭비’를 지목했다.

슬로바키아 도심 지역에서는 나무와 풀이 점차 없어지고 콘크리트가 도시를 뒤덮으면서 빗물이 토지에 자연스레 흡수되지 못해 버려지고 있다. 열섬현상은 계속해서 가속화되는 반면, 토양 밀봉으로 건조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기온을 낮출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도심 밖으로 약 1천500만㎥의 빗물이 유출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빗물 유출은 슬로바키아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스페인 타라고나(Tarragona) 지역은 빗물이 강으로 유출되면서 초래한 돌발홍수, 극심한 가뭄과 같은 극단적 기후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는 모든 지표면이 건물로 덮여버린 탓에 빗물 소실이 심각한 수준이며, 상파울루(Sao Paulo) 역시 비가 전혀 모이지 않는 건물 구조와 도로에 의한 지면 건조로 인해 빗물 유출뿐만 아니라 토양이 말라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했다.

 
 
빗물 유출로 해수면 상승 가속화

강우에 따른 도시와 숲의 빗물 유출 현상을 살펴보면 인공 환경인 도시가 자연 환경인 숲에 비해 훨씬 기복이 심한 그래프 양상을 보였으며, 비가 올 때는 일시적으로 물이 많았다가 유출로 인해 물이 없을 때는 바짝 마르는 등 불규칙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2010년 지구의 물 수지분석(water budget analysis)에 따르면 전 세계 연간 강수량 약 9만8천㎦ 중 지면에 닿으면서 유출되는 물의 양은 연간 약 3만8천㎦로, 강이나 바다로 유출되는 빗물의 비율이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빗물 유출이 궁극적으로 해수면 상승에 기여한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응집 지역의 물이 기화해 다시 비로 내리는 물의 ‘소순환’ 과정을 정상적인 상태로 전환하는 해결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매년 유럽에서는 산림벌채, 농업, 도시화 등의 영향으로 침투 및 증발산이 감소하고 유출이 증가하는 까닭에 약 600억㎥의 빗물이 운하로 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세기 기준으로 약 37조㎥의 물이 대륙에서 버려진 셈이며, 우리나라 서울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매년 500만㎥의 물이 낭비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막화·도시화로 인해 지표면 변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지표면 변화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필요하다. 자연적인 상황에서 지표면에 닿은 빗물은 지하수로 재충전되기 때문에 유출량은 낮고 증발량은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지표면 밀봉이 이뤄지면 지하수로 유입되는 빗물의 양이 현저히 감소해 그만큼 유출량이 늘어나면서 증발량도 줄어들게 된다.

또한 증발량은 구름의 양과 비례하므로 증발량이 높은 자연 환경에서는 구름의 양이 많은 반면, 농경지로 경작되거나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은 증발량이 부족해 자연 환경보다 구름이 상당량 감소한 모습을 보인다.
이로 인해 현재 슬로바키아는 고지대 강수량은 증가하고, 저지대 강수량은 감소하는 추세로 빗물 공간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저지대 강수량은 지난 한 세기 동안에만 15∼20%가 줄어들었으며, 이는 도시화·사막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슬로바키아 도심 지역인 미할로브체(Michalovce)에서 1901∼2008년 동안 매년 여름과 겨울마다 측정한 강수량 추이를 살펴보면 전체 강수량은 감소하는 동시에 여름과 겨울 간에 강수량 편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 기간 미할로브체의 월별 강수량 추이도 유사한 형태를 띠었으며, 6∼7월에는 평균 80∼100㎜의 많은 비가 내린 반면, 1∼2월에는 30㎜ 미만으로 거의 비가 오지 않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에너지 흐름 변화로 극단적 기후 초래

일반적인 태양 에너지의 분포를 살펴보면 연못, 습지, 숲 등과 같은 자연 환경에서는 태양복사의 투입으로 증발산량이 약 70∼80% 생성되고 5∼10% 정도의 현열이 발생기는 데 비해, 마른 땅에서는 현열이 약 60∼70% 생성되고 증발산량은 10∼20%에 그친다.

이처럼 태양열의 변환으로 인해 바뀐 에너지의 흐름은 구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도시의 에너지로 인해 변화된 열기층의 흐름은 구름을 산림지역으로 몰아 산림지역에는 강수량이 점점 증가하고 도심지역에는 강수가 부족한 현상이 초래됐다.

이는 도시지역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결과로, 지면의 온도나 지표면 형성 방식이 구름의 이동 방향이나 움직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공기, 물, 땅과 관련한 전체적인 물순환 사이클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도시·숲 간극, 물의 선순환 변화 초래

한편, 기후변화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과 크기를 물리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도시에서 태양열이 어떻게 열로 변화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열화상카메라로 찍은 사진 상에서는 콘크리트나 건물로 덮여 있는 도시가 그렇지 않은 숲보다 훨씬 높은 열을 방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도시와 숲의 간극은 강수량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며, 빗물침투율 및 강수량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물의 선순환 사이클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즉 도시화로 인한 빗물침투율과 증발률의 감소는 강수량 감소와 물 선순환 사이클의 크기 감소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잦은 극한 기후현상을 유발한다.슬로바키아의 경우 현재 도시화된 지역은 약 5%밖에 되지 않으나 5%의 도시화 지역이 전체 지면의 사막화에 끼칠 잠재적 영향력은 20%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슬로바키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의 전통적인 지붕 형태에서 그 원인을 찾은 결과, 내리는 빗물을 땅으로 떨어뜨려 하수구로 그대로 흘려보내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다. 실제로 강과 바다로 유출된 빗물 때문에 1900년에서 2010년까지 슬로바키아의 지하수면은 점차 하강하고 해수면은 상승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토양·물순환 연계한 새 패러다임 요구

이제는 기후 회복을 위해 새로운 물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존의 물 패러다임에서는 토양과 물순환이 서로 무관한 존재라고 봤다면, 새로운 물 패러다임은 토양(지면) 밀봉이 물순환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한다. 이처럼 새로운 물 패러다임은 물의 선순환 사이클을 회복시키고 강수량이나 빗물이 이동하는 전반적인 방식에 변화를 주는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슬로바키아는 자연적 물순환 사이클과 기후 회복을 위해 ‘글로벌 액션 플랜(Global Action Plan)’을 추진하고 있다. 플랜에 따르면 전 세계인구 70억 명이 1인당 100㎥ 정도의 빗물을 모아 활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모든 물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기후변화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천만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에서 시민 모두가 노력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도시 기온을 3∼5℃ 수준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나무 심기도 기후 회복을 위한 좋은 실천 방안이 될 수 있다. 수관 지름 10m인 나무 한 그루는 하루 평균 약 400L의 물을 증발시켜 공기층으로 내보내는데, 이는 10대 이상의 에어컨과 동일한 수준으로 도시의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 도시의 빗물관리 사례.

도시별 특화된 빗물관리 정책 활발

아울러 빗물 유출을 막기 위해 지붕 구조를 재설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붕 빗물집수는 일차적으로 지붕에서 모인 빗물이 일반관(비유공관), 유공관 등을 거쳐 자갈층으로 투수되고, 최종적으로 토양으로 침투되도록 하는 배수 시스템이다.

또한 지붕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빗물 정원으로 유출시킴으로써 지하수로 이용되거나 증발되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빗물 정원은 일반 도로보다 지대가 다소 낮게 설계돼 도심 속 빗물이 유입되게 만들어진 정원으로, 다공질성 토양에서 습기에 저항력을 가진 식물을 재배해 빗물의 토양 흡수를 도운 후 다시 대기로 증발시켜 도심의 물을 순환시키는 시설이다.

이 밖에도 △태양정원 △그늘을 위한 정원 △생물 기후 정원 조성 등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각 도시별로 특화된 빗물 관리 정책에 대한 논의 및 도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단 1㎥의 공간이라도 물의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고자 노력한다면 빗물 관리로 시원한 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먼 이야기만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워터저널』 2016년  9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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