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2주년 특집 ➊   Part 02.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관리 필요성

 

“빗물 2%만 활용해도 물부족량 충분히 보충 가능”


국토 70% 산지로 빗물 위치에너지 커 물관리 최악 조건…고유 물관리 방안 적용 필요
현행 물관리, 홍수·가뭄·상수·지하수 따로 이루어져 토양까지 고려한 IWRM 바람직


▲ 한 무 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강·호수 수량 극히 적어 기후영향 미미
 
여름이 고온다습한 우리나라는 공기 중의 습기를 흡수하여 증발산하는 잠열 능력을 필요로 하나 도시의 사막화로 인해 과거 70∼80%에 달하던 잠열 수치가 10∼20%로 떨어진 상황이다. 반면, 습도 변화 없이 공기의 온도만을 변화시키는 현열의 경우 과거 5∼10%에서 현재 60∼70%의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어 태양열을 더 빨리 다량으로 흡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물과 나무의 부재 탓으로, 밤과 낮의 일교차가 큰 사막과 같이 서울 또한 도시의 사막화로 인해 열섬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은평구, 마포구 등 산과 가까운 지역은 비교적 기온이 낮은 반면, 종로구, 성북구처럼 산과 떨어져 도심지역에 가까울수록 높은 기온을 보이는 까닭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강과 호수의 물은 국토 전체 수량의 단 1%에 해당하는 양으로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지표의 토양수와 생체수, 대기수 및 지하수가 기후에 끼치는 영향 면에서 훨씬 결정적인 만큼, 도시 전역에 나무를 심고 빗물을 모으면 충분히 기후를 회복시킬 수 있다. 이는 ‘구름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열섬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다.

 
 
지형 특색 살린 물관리로 실리 추구

지금까지 물은 한 번 사용하면 버리는 존재로 취급되어 왔으나 용도에 맞춰 수질에 따라 물의 사용을 달리한다면 여러 번 재사용할 수 있다. 강수의 경우, 과거에는 하수처리를 통해 빗물을 하천으로 흘러보냈다면 이제는 필요시 처리하여 비음용수나 지하수 충전, 정수처리를 통한 음용수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한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 그대로 상류의 윗물을 처리 및 정화하지 못하면 아래에 더러운 물이 모이게 된다. 강우량이 많을 때 하천이 더러워지는 까닭은 하수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으로, 새로운 물관리 패러다임은 윗물부터 처리해서 더러운 물이 내려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아울러 효율적인 물관리를 위해서는 우리 지세만의 특색을 살려 실리를 추구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도쿄, 런던, 워싱턴, 파리 등 평평한 지형을 가진 외국의 도시와 달리 서울은 산이 많아 지형의 높낮이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의 물관리 방안을 따라하는 것은 우리 지형에 맞지 않으며, 수질 부문에서 위치에너지에 따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 고려한 4차원적 물관리

1차원적 물관리는 집중강우 시 땅에 내린 빗물을 별다른 고려 없이 그대로 버리는 것으로 하천 범람, 도시 침수, 상습 재해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 이는 본인에게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로 인해 일어나는 일로 궁극적으로 도시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나아가 면적의 관리 단계인 2차원적 물관리는 당장 이익이 되는 것은 없지만 생태계를 고려하는 물관리 방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침투 및 저류 시설을 만들어 집중강우 시에 빗물 유출을 저감시키는 방안이 포함된다.

3차원적 물관리는 도시의 땅 속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강이나 바다와 같은 지표면의 물 외에도 지하수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자는 범위까지 포함한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 나아가 환경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적으로 인류와 환경의 공존을 위해 지속가능한 개발이 주목받듯 물관리 역시 미래까지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이기도 한 4차원적 물관리는 우리의 후손에게 안전한 물을 전해주자는 취지로 다양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보다 포괄적인 물관리 방안이다.

 
 
우리나라 강수분산 세계평균의 5배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은 1천294㎟로 적지 않으나 강수분산이 세계 평균(2천120㎟) 5배 수준인 1만1천677㎟로 매우 커 다른 나라에 비해 물관리가 어렵다. 또한 우리나라 국토의 약 70%는 산지(경사지형)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우는 여름에 집중되어 있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빗물은 위치에너지 탓에 평지에서의 빗물보다 파괴력이 더 크고 위험하며, 지하수 보충용수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물관리에 있어서 그야말로 최악의 자연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기후·지형·시민의식 등 우리 고유의 조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물관리 설계 및 유지관리 가이드라인을 작성함으로써 우리나라만의 물관리 방법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기후 및 지형조건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고조선은 우리와 같이 강수의 불규칙성이 큰 환경을 가장 잘 극복한 사례이다. 고조선의 지혜를 참고해 우리만의 물관리 방법을 구축해야 한다.

 
수자원 부족지역 분산형 빗물관리 필요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은 예부터 선조들의 물관리 철학과도 일치한다. 물관리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우리 선조들의 철학을 마을 동(洞)자와 측우기에서 엿볼 수 있다.

마을 동(洞)자는 물 수(水)와 같을 동(同)을 합한 글자로, 마을을 이룰 때 우선적으로 물관리를 고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같은 물을 쓰는 사람들을 마을 공동체로 인식한 공동체 의식을 담고 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도시를 계획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요소로 물을 꼽았다.

마을을 이룰 때 중요한 것은 물의 상태가 개발 전·후 동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산사태가 일어나는 이유는 개발을 전후하여 물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므로 늘 빗물의 운동량을 동일하게 관리해야 한다.

또한 비교적 수자원이 풍족한 지역과 달리 물을 끌어다 쓸 강이나 저수지가 없는 지역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역에서 유일한 수자원은 오직 빗물이므로 떨어지는 빗물을 잘 활용한 분산형 빗물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세계 유일 245년간 빗물기록 보유

▲ 조선시대 강수량과 강수분포는 백성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당시 경제와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우리나라는 1441년 세종대왕 시대에 강수량을 정확하게 잴 수 있는 측우기를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
조선시대 강수량과 강수분포는 백성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당시 경제와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우리나라는 1441년 세종대왕 시대에 강수량을 정확하게 잴 수 있는 측우기를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 이듬해인 1442년에는 전국의 344곳에 측우기를 설치해 강우를 기록, 이를 근거로 세금을 징수했다.

1770년 정조 시대부터 245년 간 매일 정확한 강우기록을 기록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빗물기록을 갖고 있으며, 측우기의 구조와 오차범위는 현대 우량계와 큰 차이가 안 날 정도로 과학적이고 우수하다.

경복궁에 있는 두 개의 큰 연못은 선조들의 다목적 물관리 지혜를 잘 보여준다. 경복궁 내부로 유입되는 물은 후원연못인 향원지와 경회루 연못에 일시적으로 저장되고, 넘치는 물은 내부 수로인 금천을 통해 청계천으로 유입된다. 이 연못은 비가 내릴 때 기울어진 지붕 탓에 한 번에 많은 양의 물이 내려가 자칫 홍수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됐다.

또 지붕 때문에 땅 속에 흡수되지 못하는 물이 지하로 유입되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를 통해 지하수위를 높여 충분히 식수를 공급하고 화재 등 위험 시 소방용 수로로 활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연못을 기반으로 생물의 다양성을 높일 수도 있어 다목적 빗물관리의 정석인 셈이다.

물관리, 정부 위주서 국민 동참 요구

새로운 물관리 패러다임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자연과 후손 모두가 행복한 물관리를 실현하는 것으로, 물을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만 관리한다고 한정짓던 생각에서 벗어나 전국민 모두의 동참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자연계 물순환에서는 빗물이 떨어진 자리 근처에서 최대한 저류 및 토양 함양을 함으로써 증발해 다시 내리도록 하는 물의 소순환 시스템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기후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인공계 물순환에서는 사용처에서 최대한 물을 아끼고, 비용·에너지 효율적인 생산형 수요관리를 이뤄야 한다.

과거 물관리 패러다임이 도시화와 물순환을 함께 고려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도시화를 물순환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또 홍수, 가뭄 등 물로 인한 문제에 있어 물 외에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던 과거 패러다임과 달리 이제는 토양·에너지 등 물문제를 유발하는 다른 요소를 함께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각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공급관리에서 생산형 수요관리 △버리는 빗물에서 모으는 빗물 △단일목적 물관리에서 다목적 물관리 △수량·수질 개별관리에서 통합물관리로 물관리 방안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 새로운 물관리 패러다임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자연, 후손 모두가 행복한 물관리를 실현하는 것으로, 물을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만 관리한다고 한정짓던 생각에서 벗어나 전국민 모두의 동참이 요구된다.

빗물 2% 활용시 물 25억㎥ 확보 가능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평균 물사용량은 284L로, 주요국(100∼150L)과 비교해 2배 이상을 소비하고 있어 공급관리에서 생산형 수요관리로 나아갈 필요성이 제기된다. 전체 물사용량 중 생활용수(17%)로 사용되는 수량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용도는 변기(25%)로, 서울대학교는 건물에 초절수변기 35대를 설치해 절수효과를 노렸다. 그 결과 물사용량이 기존 변기 사용량(12.26L/회)과 비교해 5.03L/회로 크게 감소했고 이로 인한 연간 물절약량은 2천182㎥에 달한다.

모든 물의 근원은 빗물로, 빗물이 고려되지 않은 수자원 계획은 뿌리를 생각하지 않은 숲 관리와 같다. 빗물은 도시 홍수, 지하수위 저하, 하천 수질 오염 등에 밀접히 관련되는 만큼 빗물을 버리는 것이 아닌 모으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물부족량은 약 10억㎥에 달하는 상황으로, 수자원 총량을 100%로 가정하면 우리는 전체의 26%만 사용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땅에 내리는 빗물의 2%만 활용해도 깨끗한 물 25억㎥를 얻는 것과 같으므로 빗물을 이용하면 이러한 물부족량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스타시티, 빗물관리 모범사례로 주목

서울 광진구는 상습적인 침수가 일어나던 지역으로, 랜드마크인 스타시티는 세계물협회(IWA) 잡지인 『WATER21』 2008년 12월호 표지에 빗물관리 모범사례로 소개될 정도로 다목적 빗물형 관리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타시티는 B동의 지하 4층 전체를 개조하여 3천㎥ 규모의 빗물탱크를 설치해 빗물을 모았다. 빗물탱크는 1천㎥ 규모 탱크 3개로 나눠지는데, 첫 번째 통은 그 지역에 내리는 빗물을 저장하여 하류의 홍수를 방지하고, 두 번째 통은 물절약용으로 모은 물을 수자원으로 활용한다. 세 번째 통을 가득 메운 1천㎥의 빗물은 화재나 정전 및 단수 시 비상용수로 쓰이며 그 양은 소방차 약 100대의 양과 같다.

이 성공적인 시범사업으로 인해 서울시에는 빗물시설을 설치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조례가 제정되었고, 전국의 다른 도시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처럼 한 구역의 뛰어난 아이디어를 다른 곳에서도 실천해 나가는 ‘와플식 물관리’로 성공사례를 늘려나가야 한다.

기후변화 대비한 IWRM 지향 바람직

현재 국내 물관리 정책은 수량·수질 개별관리로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는 만큼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새로운 물관리 패러다임을 갖춰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홍수가 발생하면 하수관 확장 및 제방 건설에 열중하고, 가뭄이 들면 댐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홍수·가뭄관리를 해왔다. 같은 맥락으로 수질오염이 발생하면 정수장을 설치하고, 지하수가 마르면 땅을 더 깊이 파 물줄기를 찾았다.

 
이처럼 홍수·가뭄·상수·하수·지하수 등을 관리하는 통합된 부서가 없이 저마다의 부처에서 물관리가 따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전체 맥락을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 놓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에 물과 토양, 자원을 모두 고려한 통합수자원관리(IWRM)로 나아가야 하며, 특히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물관리를 도시계획 및 국토관리의 최우선적인 고려사항으로 삼아야 한다.  

[『워터저널』 2016년 11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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