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날 특집  Ⅳ. 환경 분야 적정기술사업 성과 공유사례


“재난대응형 빗물이용시설 현지화 보급 완료”

마카투나오·바공실랑안 등 3곳에 빗물이용시설 60.4㎥ 설치…현지 수질기준 충족
주민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86.3%가 기존 식수원보다 빗물 선호…‘안전하다’ 답해


▲ 이 태 일
㈔에코피스아시아 사무처장

Part 01. 필리핀 태풍피해지역 마을단위 빗물이용 음용수 공급 현지화 시범사업 사례

서울대·에코네트워크㈜와 컨소시엄

2013년 11월 8일 슈퍼태풍 ‘하이옌(Haiyen)’이 필리핀 중남부 지역을 강타했다. 이는 2004년 인도양에서 발생한 쓰나미와 유사한 수준의 재앙급 태풍으로, 1만2천여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고, 100만 채 이상의 가옥이 붕괴되어 1천4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태풍에 의한 피해는 보통 전기와 식수 등에 문제를 일으키는데, 필리핀의 경우 섬이 많은 지리적 특성상 식수 부족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지금도 여러 국제단체로부터 구호의 손길이 뻗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지역별로 편차가 큰 실정이다.

이에 현지에서는 여전히 물·위생 등 재난대응형 환경적정기술 수요가 높으며, 태풍·집중호우 등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대규모 형태의 인프라 구축이 아닌 부락·마을 단위의 해법을 더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에코피스아시아는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의 지원을 받아 ‘필리핀 태풍피해지역 마을단위 빗물이용 음용수 공급 현지화 시범사업(2014년 5월∼2015년 3월)’을 실시,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서울대 산학협력단(단장 한무영 교수), 에코네트워크㈜(대표이사 임송택)와 아시안 브릿지 필리핀 등 현지 단체가 함께 했다.

사업 대상지역은 태풍피해지역인 일로일로주 마카투나오 프로퍼·바고타오 지역과 필리핀의 대표 빈민지역인 퀘존시티 바공실랑안 바칼 시티오 등 세 곳이었다. 이번 시범사업에서 ㈔에코피스아시아는 사업총괄(사업 대상지 선정, 마을단위 프로그램 모니터링 및 교육) 겸 현지조사 등을 맡았고, 서울대는 환경적정기술 현지화, 에코네트워크는 마을단위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파일럿 플랜트 설치해 시범적용 거쳐

현지조사 결과, 마카투나오의 프로퍼·바고타오 지역은 전체 인구의 47%가 정부가 정한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이 지역에는 25개의 바랑가이(우리나라의 동 단위)가 있는데, 이중 2개의 바랑가이에만 상수도가 공급되고 있다(상수도 보급률 12%).

또 1가구당 하루 200L의 물을 사용하고 있고, 주로 인근 산의 계곡수를 이용하고 있다. 이는 식수로 사용하기에 양은 충분하나, 최소 침전·여과 등의 전처리 과정이나 고도정수처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수질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바공실랑안 지역은 광역폐기물처리장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지표수 및 하천오염이 매우 심각하다. 특히 바칼 시티오는 마리키나강의 저지대에 위치해 거의 매년 홍수피해를 겪고 있다. 또 너무 빈곤한 지역이어서 광역상수원 공급에서 배제됐으며, 폐기물처리장 침출수의 영향으로 지표수나 평균 3m 이하의 지하수는 이용이 불가하다.

이에 ㈔에코피스아시아 컨소시엄은 우선 일로일로주 마카투나오 지역 중 생활용수 접근이 특히 어려운 민가에 파일럿 플랜트와 저장탱크(1㎥)를 시범 설치 및 적용키로 했다. 현지에서의 생활용수 및 식수 수질검사 결과와 지역 주민들의 의견 피드백 등을 고려하면서 현지 여건에 최적화 된 적정기술을 최종 확정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결과적으로 파일럿 플랜트의 수질은 현지 음용수 수질기준상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간이 수질검사 결과에서도 우리나라 상수원수 기준 2∼3급수의 수질로 확인됐으나, 보다 정밀한 검사를 위해 현지의 센트럴 필리핀 대학에 파일럿 테스트 수질검사를 의뢰한 결과,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으로 수질기준을 만족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역별 여건 고려 물탱크 60.4㎥ 설치

이를 바탕으로 2014년 11월에는 본격적인 마을단위 현지화 시범사업이 이뤄졌다. ㈔에코피스아시아 컨소시엄은 사업대상지 3곳에 총 60.4㎥ 규모의 마을단위 물탱크를 설치했다. 마카투나오 프로퍼 지역에 43.8㎥, 바고타오 지역에 10.6㎥, 바공실랑안 바칼 지역에 6㎥을 각각 설치했다.

이때 각 지역별 최적의 시설 규모를 산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빗물이용시설이라고 해서 건기 때 사용하지 못하면 사람들의 신뢰가 떨어지므로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기 위해 각 지역별로 강우패턴을 분석했다. 지역별 강우량 차이, 건기와 우기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 건기와 우기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규모를 산출했다.

현지인들의 의견도 최대한 수용했다. 일로일로주는 주변에 공장 등 대기오염시설이 없어 별도의 정수시설 없이 스텐인레스 재질의 시설을 설치했지만, 퀘존시티의 경우는 대기오염이 심해 태양광을 활용한 흡착식 활성탄 정화시설을 설치해야 했다. 그러나 재난대응형 시설인 관계로 저장탱크를 높이 설치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어 소형 펌프를 달아 수압이 없는 곳에서도 정수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이와 더불어 각 마을에는 빗물관리위원회를 조직했다. 적정기술 보급 취지에 걸맞는 자율적이고 주민참여적인 빗물관리를 위해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는 인사 5∼10명으로 구성하되, 실제 집행력을 갖춘 선출직인 바랑가이 캡틴과 카운슬러, 학교책임자, 주민 대표들을 포함시켰다.

그들에게 주 또는 월 단위로 빗물받이통 및 옥상 등을 청소하면서 유지관리를 책임지도록 했으며, 3개월에 한 번씩은 빗물통 전체를 비워 청소를 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적정기술 현지화에 대한 인식 증진을 통해 사용자들이 시설에 주민의식을 가지게 만들도록 했다.

유지관리 매뉴얼·설문 통해 주민 소통

2015년 3월에는 사업의 확산을 위해 사업대상지 3곳에 정책제안서를 전달하고 설치 시설의 모니터링 및 주민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우선 모니터링 결과 이번 현지화 사업의 시설 선정이 잘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사업 제안 초기 집수율은 70% 수준이었으나, 시범시설 설치구역 3곳의 빗물저장탱크 집수량과 사용량·집수율을 측정한 결과, 실제 설치된 6곳의 평균은 80.7%에 달해 목표치를 훨씬 넘겼다. 

▲ 지난 2015년 2월 필리핀 태풍피해지역인 일로일로주 콘셉시온시 마카투나오 바랑가이(왼쪽) 및 메트로마닐라 퀘존시티 바공실랑안 바랑가이(오른쪽)에서 열린 마을단위 빗물이용 음용수 공급 현지화 사업 준공식 모습.

마카투나오 프로퍼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설치된 빗물관리시설 만족도 설문조사(현지인 32명 대상)에서는 응답자의 86.36%가 빗물을 기존 식수원보다 식수원으로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65%가 ‘안전함’을 꼽았다. 또 응답자의 96.78%는 빗물의 맛이 좋다고 평가했고, 90.63%는 빗물이 안전하다고 여겼다. 87.10%는 현지화 시범시설이 사용하기 쉽다고 여겼다.

아울러 ㈔에코피스아시아 컨소시엄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시운전 및 유지관리 교육을 실시했다. 빗물관리시설 유지관리 매뉴얼에 △시설 소개 △유지관리방법 △운영위원회 △문제해결방법 △체크리스트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해당 지자체 공무원 및 바랑가이 대표 등을 대상으로 시운전 및 유지관리 교육 세미나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세미나 후에는 설문조사를 통해 매뉴얼과 세미나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적극 수렴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시범사업은 △과학기술적 성과(마을단위 빗물이용 음용수 확보) △경제사회적 성과(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및 인식 증진) △환경적 성과(안전한 음용수 확보)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성공적으로 완료됐다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효과성 측면에서 저비용·저에너지의 빗물이용시설을 현지화하여 보급하는 데 성공한 것이 이번 사업의 핵심 성과이다. 또 기존 필리핀 기술로 공급한 빗물 음용수의 수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이번 시범사업 시설을 통해 긍정적으로 바꾸었고, 맛과 안전성에 대해서도 높은 만족도를 달성했다. 아울러 긴급구호 시기 이후 재난 극복시기에도 현지화 시범시설을 통해 건기와 우기 모두 상시적인 음용수 공급이 가능토록 하여 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빈곤극복에 기여했다. 

[『워터저널』 2018년 6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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