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 인한 재해를 예방하자 / Ⅳ. 홍수피해 악순환, 대책은 없나? (최동진/국토환경연구소 소장)

지자체 주도·주민 참여하는 홍수대책 전환 시급

국지성 ‘돌발홍수’ 일상화…홍수 예측·통제 더욱 어려워져
미국·일본·유럽의 홍수정책, 통제보다  ‘적응대책’ 에 치중


   
▲ 최동진/국토환경연구소 소장

새로운 홍수 대책의 관건은 지역 주도 아래 이루어지는 주민참여의 유역관리체계이다. 특히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새로운 홍수피해를 경험하면서 홍수대책에 대한 새로운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최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홍수피해는 과거와는 매우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무엇보다도 강우 패턴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평균적인 강우량이 증가하면서, 강우의 집중도가 더욱 높아지는 즉 짧은 기간 동안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지는 ‘돌발홍수(Flash Flood)’가 일상화되고 있어, 이로 인한 홍수의 예측과 통제가 더욱 어려워 졌다.

홍수정책 패러다임 전환 필요

과거의 우리나라 홍수대책에서는 해마다 일정한 패턴의 강우량 변화가 가정되고, 그에 따라 적절한 홍수대책이 세워졌다. 과거의 강우 강도를 기준으로 시설물의 설계기준이 정해졌고, 적절한 홍수 방어를 위한 시설들이 설치됐다. 여름철에 비가 잠기던 지역도 설계 홍수 빈도를 기준으로 한 제방이 세워지면 안전하다고 인식되었고, 주택과 산업시설들이 들어섰다.

   
▲ 최근 몇 년간의 강우 패턴은 짧은 기간 동안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지는 ‘돌발홍수’가 일상화되고 있어, 이로 인한 홍수의 예측과 통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홍수는 예측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라고 인식했으며, 홍수터는 산업과 경제를 위해 집중적으로 개발됐다. 이러한 예측 가능한 홍수를 통제하기 위한 댐과 제방을 건설하는 것이 홍수대책이었으며, 그 동안 인구와 산업이 밀집된 지역과 국가하천 구간에 대해서는 이러한 대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의 강우 패턴과 홍수피해는 이러한 기존의 홍수 정책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산간지방에 갑자기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돌발홍수는 댐과 제방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고,  예측하기도 곤란하다.

비가 내리면 최대한 빨리 큰 하천으로 물을 보내어 빠르게 바다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천을 정비해 온 그 동안의 정책은 점차 강우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하천 본류의 하류 구간에 홍수량을 집중시켜 하류지역 대도시들의 홍수위험을 더욱 크게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의 어려움을 반영해 홍수정책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또 홍수관련 전문가들뿐만 홍수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기관들도 새로운 홍수정책들을 제시했는 데, △홍수 총량관리 △홍수량 할당제도 도입 △홍수터 관리 강화 △홍수위험지도 작성 △홍수보험제도 도입 △홍수 예·경보 시스템 확대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대책들이 정책현장에 도입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정책들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과 구체적인 시책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기존의 정책적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개념의 홍수대책을 어떻게 실천과 연계시킬 것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홍수관리, 대부분 정부가 주도

특히 새로운 홍수대책의 정책적 구현을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에서 여러 가지 노력들이 전개되어야 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홍수대책들을 앞으로 누가 책임지고 시행해야 할 것인가? ’하는 관리 주체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홍수관리는 대부분 중앙정부 주도로 이루어져 왔다. 홍수대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홍수조절을 위한 댐의 건설과 국가하천의 정비였다. 이른바 구조물 대책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대책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중앙정부 주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측면이었다.

   
▲ 미국은 2005년 8월 뉴올리언스를 덮친 하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대규모 수해를 겪으면서 댐과 제방이 있으면 항상 안전한 것이 아니라 ‘돌발홍수’에 의해 댐이 넘치고 제방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까지를 가정하고 홍수 예방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카트리나’로 시내 전체가 물바다가 된 뉴올리언스의 당시 모습.
이는 대규모 예산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개별 시책들이 여러 행정구역들을 포괄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방자체단체는 주도적으로 치수대책을 세울 필요도 없었고, 전통적으로 치수는 주민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였다.

특정한 산간지역에 농경지를 개발하고 홍수위험 지역에 주택을 건설하여 홍수피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피해는 국가가 전체 국민의 세금으로 배상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홍수피해는 지방자치단체나 주민의 지역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하는 냉소적인 얘기까지 나돌 정도이다.

   
▲ 향후 홍수관리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주민이 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에서 최근에 적극적으로 도입해 시행하고 있고, 국내 전문가 및 정책담당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홍수 대책들의 핵심은 ‘적응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홍수를 방어하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홍수에 적응하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미국 수자원 관리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온 미 공병단은 최근 ‘홍수통제(Flood Control)’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최근 대규모 수해를 겪으면서 홍수를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댐과 제방이 있으면 항상 안전한 것이 아니라 ‘돌발홍수’에 의해 댐이 넘치고 제방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까지를 가정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홍수의 통제가 아니라 ‘홍수피해저감(Reducing Flood Losses)’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고, 구조적 수단과 비 구조적 수단을 통합하고, 환경 복원을 추구한다. 홍수대책의 중심을 홍수터 관리에 두고 있는 것으로 이는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홍수와 더불어 살기(Living with Flood)’,‘물을 위한 더 많은 공간(More Space for Water)’이 홍수관리의 모토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역시 유역과 범람한 차원에서의 홍수대책, 원인자 부담의 관점에 선 치수대책, 지역주민의 협력에 의한 대책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적응대책’은 홍수의 통제나 방어가 아니라 홍수의 상황을 어느 정도 가정하면서 대책을 세우는 즉, 도시계획을 비롯한 토지이용계획을 홍수로 인한 침수 가능성을 고려해 가면서 수립하는 것이다.

또 홍수위험이 높은 지역은 경우에 따라서 주민을 이주하게 하거나 홍수보험을 들게 하고, 홍수 예보·경보를 강화해 홍수발생 시 신속하게 주민이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홍수터 관리의 핵심은 홍수터를 통해 홍수를 막는 것이 아니라 홍수의 유입을 가정하고 이에 적응하는 것이며, 홍수터를 하천에 돌려주는 것이다.

최근에 국내에서는 홍수터 관리를 마치 기존의 홍수통제 수단들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한탄강댐 건설 논쟁에서는 마치 천변저류지를 홍수통제의 수단으로 댐이나 제방과 같이 수평적으로 비교하고 있으며, 유역종합치수대책에서도 동일한 관점에서 검토를 하고 있다.

그러나 천변저류지와 같은 시설들은 홍수조절용 댐과 같이 하류지역의 홍수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지역의 홍수피해를 저감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필요가 있다.

홍수 경각심 높이는 교육 강화해야

또한 이러한 새로운 홍수 대책들은 대부분 중앙정부가 집중적인 예산을 투자해 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기존의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하고 주민 스스로 책임을 지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는 중앙정부가 홍수위험지도를 만들 수는 있지만, 이를 토지이용계획에 반영해야 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이고, 비상시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주체는 지역주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지역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관리체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주민이 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자체와 주민 주도의 물관리를 중앙정부가 담당하고 있는 댐과 제방 등 대규모 하천 시설들의 관리를 포함한 기존의 중앙정부 업무를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는 데, 이는 편향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물관리의 중심이 지방과 주민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기존의 관리업무를 이관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지자체가 담당하여야 하는 시책들이 더욱 중요하게 된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최근 「물관리기본법」의 제정과 물관리 체계 개편이 화두가 되고 있는 유역관리는 이러한 새로운 지역주도의 주민 참여 관리체계를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지방 주도의 주민참여 홍수대책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중앙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홍수위험지도와 침수예상 구역을 작성하고, 관련 기준이나 모범사례를 마련해 지방자치단체가 토지이용계획을 세우고, 홍수 관련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지역주민들에게 홍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교육을 하고 비상시 대피훈련을 하도록 하는 것 역시 중앙정부가 지원자로서 담당해야 할 역할이다.

즉 지역의 홍수 적응 역량을 높이고, 다양한 주민 참여 대책을 세우기 위한 지원자로서의 중앙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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