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200호 특집①  Ⅳ. 도시 물순환 건전성 회복 위한 정책방향


“모든 물자산 관리하는 새로운 통합물관리 실현해야”

끊어진 물순환 고리, 사회 문제 해결형 통합물관리 통해 회복 필요
물순환관리로 물 분야 ‘탄소넷제로’ 선도해야…환경부·국회 역할 중요

 

▲ 한 무 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Part 01. 통합물관리를 위한 물순환 역할

도시 물문제 진단과 대책 자체에 문제 있어

도시의 물관리가 받고 있는 도전은 비가 올 때 강으로 섞여 흘러 들어간 하수와 빗물이 범람하는 홍수, 지하수위가 저하되어 발생하는 싱크홀(sink hole), 도시용수가 마르는 도시 열섬 현상 등 다양하다. 게다가 기후변화가 심화됨에 따라 이 같은 도시 물문제는 계속해서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심각성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2050년 탄소넷제로(Net-zero, 탄소중립)’ 정책이 사회적 당면과제로 떠오르면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도시 물관리 문제는 과거부터 수십 년 간 지속되어 온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였음에도 해결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은 문제점 진단과 대책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에 문제를 다시 보고 풀어나갈 방법을 강구할 때다.

여러 방법 중 하나가 통합물관리다. 그리고 통합물관리의 시작은 빗물을 관리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로 바로 나타나는 것이 물문제인데 홍수, 가뭄, 싱크홀, 도시열섬 등과 같은 현상은 빗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이러한 빗물을 모으지 않고 버리고 있다. 물문제의 근본 원인 파악과 처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부처·부서 간 융합 통한 총체적 물관리 필요

그간 우리나라 물관리는 홍수, 가뭄, 상하수도, 지하수 등을 관리하는 통합된 부서 없이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다뤄왔다. 이는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현상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분에 국한되어 본질을 흐리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이에 따른 문제점이 하나둘 터지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국토부 등 부처에 산재된 물관리 업무를 환경부로 일원화하는 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물관리 일원화를 이룬 환경부에서도 여전히 부서 간 따로따로식 물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통합물관리를 위해서는 이제 부처, 부서 간 융합을 통한 총체적 물관리가 필요하다. 또 총체적인 물관리를 왜 해야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떠한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동의도 필요하다.

「물관리기본법」 제12조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물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시행할 때에는 물순환 과정의 전(全) 주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하천수를 처리해 도시로 공급되는 상수, 사용 후 버려지는 하수, 하수가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후 다시 하천으로 들어가는 과정만을 물순환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인공계 물순환, 즉 좁은 의미의 물순환이다.

다시 말해 자연계 물순환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자연계 물순환은 빗물에서 시작해 토양수, 식생수, 지하수 등도 물관리 범주에 포함시켜 이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물순환이다. 통합물관리는 인공계 물순환뿐만 아니라 자연계 물순환까지 아우르는 물관리가 되어야 한다.

 
도시 이룰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물’

통합물관리라는 새로운 물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철학(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마을 동(洞)’자 물관리 철학이다. 동(洞)자는 물 수(水)와 같을 동(同)자를 합친 글자로 마을 또는 도시를 이룰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물’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마을 또는 도시 주민은 같은 물을 이용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담고 있다.

이 철학은 마을을 이룰 때 물의 상태가 개발 전·후 동일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개발로 인해 물의 상태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물이 비교적 풍족한 지역과 달리 물을 끌어다 쓸 하천이나 호수가 없는 지역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물은 오직 하늘에서 1천300㎜씩 떨어지는 빗물이다. 따라서 빗물을 잘 관리하는 빗물관리의 중요성까지 ‘마을 동(洞)’자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경복궁에 있는 경회루지와 향원정지라는 두 연못이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이들은 빗물이용시설로 만들어져 소위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실현하고 있다. 북악산 기슭에 건물을 많이 지으면 유출계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최하류에 있는 청계천에 홍수가 나기 쉬운데, 이들 연못의 기울어진 지붕은 한 번에 많은 양의 물이 내려가 홍수가 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지붕 때문에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물이 지하로 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여 지하수위를 높이는데, 이는 비상시 식수 공급, 화재용수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두 번째로 고차원적인 물관리가 요구된다. 소위 1차원적 물관리, 즉 선적인 물관리는 도시 전체에 떨어진 빗물을 하수도나 하천에서 모두 관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으로는 기후변화 등에 따른 집중강우 시 하천에 물이 예상했던 양보다 더 흘러 들어가면 홍수, 도시 침수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 이는 나에게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적인 방법으로, 도시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보다 다소 진보한 2차원적 물관리, 즉 면적인 물관리는 도시 전역에 떨어지는 빗물을 하수나 하천에 바로 떨어뜨리지 말고 따로 받아 관리하자는 개념이다. 각 건물이나 단지에 떨어지는 빗물을 저류해 하천으로 내려가는 물의 양을 줄인다면 하천이나 하수도를 더 증설하지 않고도 홍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산 중턱에 있는 집은 홍수 피해를 입을 확률이 적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빗물을 받아두는 저류지를 만들면 홍수를 방지할 수 있다.

통합물관리 실행 위해 고차원적인 물관리 요구

3차원적인 물관리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설계하듯이 땅속도 설계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지표수 외에 지하수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물관리를 의미한다. 땅속에 흐르는 풍부한 수량의 지하수는 지표면뿐만 아니라 동식물이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지하수 채취 등으로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면서 지반침하, 수위변동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3차원적 물관리의 핵심은 지하수를 퍼 올려 사용하는 만큼 빗물로 보충해 지하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 동식물, 나아가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지향한다.

이 모든 차원의 물관리를 포괄하는 4차원적인 물관리는 물관리 시설을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다음 세대를 위하는 물관리 개념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시설 고장이나 막대한 유지비용 등은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따라서 4차원적 물관리는 자연환경과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통합물관리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고차원적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세 번째 철학은 치산(治山) 후 치수(治水)이다. 효율적인 물관리를 위해서는 우리 지형만의 특색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쿄, 워싱턴, 런던, 파리 등 평지 지형을 가진 외국도시와 달리 우리나라는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이뤄져 있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의 단면을 보면 왼쪽에는 북악산, 오른쪽에는 남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북악산 하류에 청와대와 광화문이 있다.

광화문이 잦은 침수에 시달리는 이유는 해외 선진도시의 물관리 방식을 그대로 도입한 현행 물관리 방식 때문이다. 선진국의 물관리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산에 계단식 논, 저류지 등을 만들어 홍수를 방지했듯이 지금부터라도 우리 지형에 맞는 물관리 즉, 치산(治山), 산지에 있는 물부터 잘 관리한 후 치수(治水), 물을 관리해야 한다. 

물과 에너지를 같이 생각하는 새 패러다임 필요

네 번째 철학은 국토의 모든 물자산을 관리하자는 것이다. 국토는 산과 평야, 하천과 강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 중 물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에 있는 물만 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강과 호수에 있는 물의 양은 국토 전체 물의 양의 1%에 불과하며, 토양수와 식생수(생체수)가 50%, 대기수가 10% 등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강과 호수의 물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적으며 기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은 토양수와 생체수이다.

이에 더해 매년 하늘에서는 1천300억㎥가량의 빗물이 떨어진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국토의 아주 일부인 하천수만 관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발 후 토양수가 소실되고 지하수위가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이는 결국 우리가 가진 물 자산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국토 전역의 빗물을 모으고 나무를 심으면 기후는 회복할 수 있다.

다섯 번째, 물과 에너지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 물을 공급하는 대안은 해수담수화, 하수 재이용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각 방식으로 물을 1㎥ 끌어올 때 에너지가 얼마나 많이 소요되는지를 계산해 본 결과, 광역상수도는 1㎥ 당 0.24㎾h(공급길이 15㎞ 기준), 해수담수화는 4〜8㎾h, 하수재이용은 12㎾h, 빗물은 0.0012㎾h로 나타났다. 따라서 빗물을 이용하는 것이 에너지를 가장 절약하면서 탄소중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폭염과 도시 열섬을 해결하는 데에도 빗물과 식물만한 대안이 없다. 일반 콘크리트 옥상과 서울대 35동 빗물관리 옥상을 비교해보면, 최대 온도차가 섭씨 25〜30도까지 차이 날 정도로 서울대 35동 옥상이 매우 시원하다. 서울시의 모든 건물의 옥상과 도로를 이처럼 물과 식물이 있는 것으로 만든다면 서울의 열섬 현상은 금방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물과 에너지를 같이 생각하는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다목적 분산형 물관리·와플식 물관리가 바람직

결국 다목적 분산형 물관리가 바람직한데,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가 많다. 저서 『하늘물을 모아봐요 요렇게』에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한 사례를 담았고, 영문책인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시설의 시설 설계 방법(Hydrological Design of Multi-purpose Micro-catchment : Rainwater Management)』에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시설 설계 방법과 관련 이론 및 실제 적용사례를 기록했다.

실제 우리나라에도 다목적 분산형 물관리를 실현하는 세계적 수준의 빗물이용시설이 있다.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이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이 시설은 세계물협회(IWA)가 발간하는 잡지 『Water21』 2008년 12월호 커버스토리로 실리는 등 세계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은 시설이다. 2007년 처음 조성되어 지금까지 약 13년 동안 연간 약 4만㎥의 빗물 재활용을 통해 분산형 물관리를 해오고 있다. 현재 각 세대별 유지관리비는 한 달에 약 300원 선이다.

이곳은 원래 건국대 야구장 부지로 상습침수구역이었다. 이곳에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처음으로 3%의 추가 전용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스타시티는 1천㎥짜리 세 개, 총 3천㎥ 규모의 빗물탱크를 각각 홍수방지용(빗물저장), 물절약용(조경, 화장실 용수), 비상용(단수 시 비상용수, 화재용수 등)으로 활용해 다목적 빗물관리를 도모하고 있다.

단지 내에 떨어지는 빗물을 100㎜까지 한 방울도 안 새어 나가도록 만들어 홍수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이곳에 떨어지는 빗물을 이용한 아름다운 조경과 근처에 화재나 단수가 발생해도 저렴하게 물을 이용해 금방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곧 모두가 행복한 물관리인 ‘상생형(win-win) 다목적 빗물관리’이다.

스타시티는 한 구역의 뛰어난 아이디어를 다른 곳에서도 실천해나가는 와플식 물관리의 첫 성공사례이기도 하다. 와플은 여러 개의 셀(cell)로 이뤄진 과자인데, 스타시티가 바로 와플의 한 셀인 셈이다. 이 조그마한 하나의 셀에서 적은 비용으로 모두가 행복한 물관리를 이룬 것이다. 다른 셀 즉, 다른 도시의 개발 또는 재개발 때 같은 방법을 쓰면 서울시 전체의 물관리는 모두가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타시티 조성 사업이 성공을 거두며 최근 레인시티가 확산되고 있다. 레인시티는 빗물의 중요성을 알고 빗물을 버리는 대신 모으도록 조례를 만든 도시를 뜻한다. 일례로 서울대학교 35동 건설환경공학부 옥상에 조성한 오목형 텃밭에서는 초여름이면 감자를 수확해 주민들과 파티를 하고, 가을에는 배추를 심어 외국 유학생 및 지역주민들과 김장을 한다. 비록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하지 못했지만 이 텃밭으로 홍수를 방지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며, 식량을 생산하고,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잃어버린 공동체를 부활시켰다. 이를 ‘W-E-F-C’의 개념으로 세미나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발표함으로써 국제적인 상도 많이 받았다. 또 에너지 글로벌 어워드(Energy Global Award 2013), 월드 워터 포럼(World Water Forum 2015) 등 다수의 국제학회에서 이 사례를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기도 했다.

▲ 서울시 광진구 소재 스타시티 조감도. 스타시티는 1천㎥짜리 3개, 총 3천㎥ 규모의 빗물탱크를 각각 홍수방지용(빗물저장), 물절약용(조경, 화장실 용수), 비상용(단수 시 비상용수, 화재용수 등)으로 활용해 다목적 빗물관리를 도모하고 있다.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통합물관리 필요

지금까지의 물관리는 수자원, 상하수도, 도시, 건축, 조경, 수질, 생태, 빗물 등 각 물관리 요소별로 분산되어 있었다. 물 관련 학회도 한국수자원학회, 대한상하수도학회, 한국물환경학회 등으로 물관리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물관리가 일원화되어 통합물관리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스마트 시티를 조성한다고 할 때 상수 절감과 홍수 방지, 토양수 증가, 시민 참여, 비상시 수원확보, 폭염 대응, 탄소 저감, 지하수 충전과 같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마침내 「물관리기본법」에 명시된 ‘통합물관리’로 인해 분절된 물관리로 끊어진 물순환 고리를 다시 이을 수 있는 발판이 구축됐다. 아울러, 각 분야에 분산된 전문지식을 통합해 사회 문제 해결형의 통합물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물관리 요소 중 두 개 이상의 통합을 장려하는 새로운 과제나 사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같이 물순환 관리의 좋은 사례를 많이 만들어 우리나라가 기후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나아가 물 분야 ‘탄소넷제로(Net-Zero, 탄소중립)를 선도하길 바란다. 이를 위한 환경부와 국회의 선도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앞으로 우리나라 물관리는 모든 물을, 모든 사람이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모든 물의 관리를 지향하는 물관리 철학으로, 기후위기로부터 전 세계를 살릴 수 있다. 이 철학을 바탕으로 통합물관리가 실현된다면 우리나라의 물관리가 세계 최고가 되는 날은 그리 먼 일이 아니다.

[『워터저널』 2021년 3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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