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7일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가 삼성중공업의 대형 해상 크레인선과 충돌한 후,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서북쪽 8km 지점은 푸른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커먼‘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유출된 원유 1만 5천여 톤이 폭 40~50m, 길이 40여 km의 두꺼운 기름띠를 이뤄 태안 해상 국립공원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사태는 최악의 사고로 기록된 12년 전 씨프린스호 사고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사고 지역은 식생이 풍부하고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손꼽힌다. 인근의 가로림만과 천수만은 갯벌 생태계가 우수하고, 어류의 자연산란장이자 각종 해산물 양식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기름 유출로 인한 오염 복구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표면적인 복구는 3~4년이 소요되지만, 근본적인 치유는 수십 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기름 유출의 복구와 그 생태학적 피해를 규명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1969년 9월 약 17만5천 갤런(Gallon : 1갤런=4.5459631L)에 달하는 2등급 연료 원유가 플로리다 바지선으로부터 미국 매사추세츠주 팰머스(Falmouth) 서부 근처의 케이프 코드 곶(Cape Cod : 매사추세 주 남동부에 있는 반도) 인근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케이프 코드 곶은 기름 유출 후 외관상으로는 복구된 것처럼 보였지만, 40여년이 넘도록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만성적인 생물학적 효과가 습지(Marsh)에 남아있다고 과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2007년 4월, BUMP(Boston University Marine Program)의 박사 과정 학생인 Jennifer Culbertson과 우즈홀 해양연구소(WHOI :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해양 화학자인 Chris Reddy, 생태학자인 Ivan Valiela 등을 주축으로 하는 연구진은 습지에 서식하는 농게(Fiddler crab)에 대한 현장 관측과 연구실 내 실험을 통하여 1969년 기름 유출이 발생한 이후 농게가 남아 있는 기름을 구성하는 화학 물질에 노출될 때 굴을 파는 행동양식(Burrowing behavior), 탈출 반응(Escape response), 영양률(Feeding rate), 개체 수 등이 상당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연구에 앞서 2002년 발표된 WHOI 보고서는 플로리다 바지선이 난파되어 발생한 기름 유출로 팰머스에 위치한 와일드 하버(Wild Harbor) 습지의 표면 하부 8~20cm의 침전물에 기름을 구성하는 화학 물질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기름 유출의 영향을 받은 습지에서 농게는 아직도 수 cm 이상의 굴을 파지 못한다.


 Culbertson의 실험과 현장 연구는 2005년과 2006년 여름 팰머스 와일드 하버 습지와 그레이트 씨페위셋(Great Sippewissett) 습지에서 수행됐다. 표면에서 두 지역의 습지는 일상적인 동식물, 침전물 유형, 지질학적 역사 등은 아주 유사하게 보였다. 연구진은 와일드 하버 침전물에서 2등급 연료 찌꺼기를 검출했지만, 그레이트 씨페위셋 침전물에서는 2등급 연료 찌꺼기를 검출할 수 없었다.


 Reddy는 와일드 하버에서 습지가 복구되었다는 피상적인 징후가 있었지만, 아직 표면 아래 수 cm에서는 화학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게의 굴을 파는 행동 양식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자 연구진은 두 습지에 있는 31개의 굴에 소성석고를 부었다. 이후 연구진은 습지 진흙에서 굴의 주형을 제거하고 굴의 형태와 크기를 측정했다. 상대적으로 원형 그대로의 습지인 그레이트 씨페위셋 습지에 성게가 판 굴은 평균 14.8cm 가량으로, 수직 형태로 뻗어 있었다. 와일드 하버 습지에서 굴은 평균 6.8cm로 14cm 이상의 깊은 굴은 관찰되지 않았으며, 성게가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어 굴의 형태가 일정하지 않았다. 위축되고 뒤틀린 굴의 위치는 침전물에서 기름 찌꺼기가 관찰된 위치와 유사하게 나타났다.



   
 또한, 연구진은 농게의 탈출 반응을 습지와 실험실에서 관찰했다. 두 곳의 습지에서 농게를 잡은 후 연구진은 기름이 침투한 습지와 청정한 습지에서 얻은 침전물을 먹이로 주고, 농게가 습지와 실험실로부터 얼마나 멀리 이동하는지를 시각자극(Visual stimuli)을 이용하여 테스트했다. 실험 결과 기름이 침투한 침전물을 섭취한 농게가 상당히 더 느리게 반응했다.


 연구진은 농게가 기름에 노출됐을 때 얼마나 빨리 먹이를 소비하는지와 각 습지에서 농게의 개체 수를 측정했다. 기름에 노출됐을 때 먹이를 섭취하는 속도가 훨씬 더 느렸으며, 그 결과 기름으로 오염된 습지에서 농게의 개체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Valiela는 오래전 유출된 기름의 생물학적 효과를 증명하는 것은 어려우며, 이번 연구가 남아 있은 기름 함량과 생물학적 효과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여 미래 기름 유출이 발생한 후 관리 조치에 대한 기준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수출입 물량 대부분이 해로를 이용하고 있어, 유사한 해양 오염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충남 지역 4개 군에 대하여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로 하고, 해양오염방제대책본부를 중심으로 오염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오염을 제거하는 방안은 최첨단 방제 장비를 이용하기보다 삽, 양동이, 인력 등에 의존하고 있어 일부 언론은 이러한 노력을 헝그리 방제 작업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정부는 초기 진압에도 안일한 대응을 하여 재앙을 부추긴 꼴이 되어버렸다. 터전을 잃은 해양 동식물과 어민들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심정 역시 참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는 법, 이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고심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인 증거는 기름 유출이 단기간에 종식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갯벌로 이루어진 서해안은 기름을 완전히 제거할 뾰족한 묘안이 없지만, 우선은 신속하게 유출된 기름을 거둬들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단기간에 걸친 피상적인 복구로 모든 작업이 끝났다고 안도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체계적인 예방 대책과 방제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갯벌을 포함한 해양 생태계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하여 장기적인 오염 정화와 복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실수는 순간이지만 엄청난 피해는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겠다.


출처=『Techno Leaders' Digest (T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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