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NGO·시민 노력으로 ‘죽음의 강’ 오명 벗어

대영제국 팽창 따른 공업화로 템즈강 19세기부터 오염 심화
템즈강 오염에 의한 콜레라 창궐…1849∼54년 4만여명 사망

 

템즈강은 씨렌케스터 근처에서 시작되어 테딩턴까지 담수가 흐르는 길이가 총 245km이며, 런던을 거쳐 북해로 흘러들어 가는 강으로서 런던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테딩턴에서부터 강의 하구부까지 90km는 북해의 조수의 간만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다. 유역의 면적은 1만3천400㎢이며, 강폭은 상류 지역인 옥스퍼드에서는 45m, 테딩턴 부근에서는 75m, 런던 브리지에서는 255m이며, 강 하구부에서는 9km에 이른다.

   
▲ 영국 템즈강은 우리나라 한강처럼 도시발달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급격한 산업발달로 템즈강이 많이 오염되었었으나 정부·NGO·시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가장 깨끗한 하천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템즈강변의 국회의사당 전경.

템즈강은 수운과 상수도원으로 이용되며 상류는 요트와 보트놀이에 이용된다. 현재 템즈강의 수계관리는 런던 브리지까지의 담수는 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기관으로써 최근에 민간기업으로 전환되어 수십억 달러의 사업을 운영하는 Thames Water Authority에서 맡고 있는데 주로 상수처리와 하수처리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시민들이 믿고 수돗물을 생수로 마시고 있다.


런던은 15세기의 헨리 7세 때부터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는데 템즈강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물고기의 영양분이 가장 풍부하였으며, 연어, 송어, 농어, 잉어, 살기 등 여러 종류의 담수어가 살고 있어 어족이 많은 하천으로 유명했다. 18세기 말부터 런던을 흐르고 있는 템즈강의 지류가 다소 오염되기 시작, 부분적으로 하수처리장을 설치하여 정화한 결과 연어 등 많은 어류가 살고 있었다.

1858년은 ‘위대한 악취의 해’

그러다가 19세기 전반에 걸쳐 런던은 아주 커다란 변혁을 겪게 된다. 대영제국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세계 교역량의 1/3을 담당하게 되고 산업시설이 들어서면서 런던이 대도시로 전환되었다. 템즈강은 산업혁명 이후 공업화를 거치면서 가장 오염을 심화시키는 업종인 철강, 화학, 석탄, 방직산업 등의 폐수에 의하여 심하게 오염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오염물질이 페놀과 암모니아 등이었다. 또한 산업폐수에 의한 오염뿐만 아니라 19세기에 영국에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주택의 수가 급증하였고, 각 가정에서 배출되는 하수가 템즈강으로 직접 유입되면서 강은 썩어가기 시작하였고, 강 유역은 고형의 폐기물로 덮여 가고 있었다.


1850년경에는 악취가 심하였는데 그 중 가장 악취가 심한 지역은 주로 빈민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이곳 주민들은 시종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858년에는 기후가 건조하고 기온도 높아지자 런던 전역이 템즈강의 악취로 뒤덮이게 되면서 시민들의 주목을 끌게 되어 1858년은 ‘위대한 악취의 해’로 명명되었다. 그 해 6월에 빅토리아여왕 등 많은 귀족들과 외국에서 초청된 고관들이 새로 건조한 배를 기념하기 위하여 템즈강을 가로지르게 되었는데 이 때 템즈강의 악취 때문에 기념행사 자체가 중단되었다.


또한 그 해에 템즈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는 국회의사당에서는 악취를 막기 위해 소독제에 담궈 놓았던 천으로 창문을 가려놓은 상태에서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되니 자연 템즈강의 오염을 막기 위한 여러 입법조치들이 더욱 신속하게 처리되게 되었다.

   
▲ 템즈강은 산업혁명 이후 공업화를 거치면서 심하게 오염되었다. 그림은 1930년대에 오염된 템즈강을 귀족들이 배를타고 건너는 모습.

그러나 강의 오염으로부터 발생하는 시각적이고 후각적인 불쾌함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오염된 원수로부터 직접 공급되는 식수가 오염된 결과로 질병에 감염될 위험성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런던의 시민 중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수인성 전염병에 많이 감염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로 하수 등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흐르는 얕은 샘에서 식수를 구하거나 혹은 하수 배출구가 위치하고 있는 템즈강으로부터 파이프를 통하여 물을 공급받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1830년대부터 1866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콜레라가 발생하여 런던에서만 1849년에 1만8천36명이 사망하였고, 1854년에는 2만 명 정도가 사망을 했다.


특히 이 당시 여러 학자들이 콜레라의 만연은 오염된 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속속 보고함에 따라 대중의 여론은 공중보건당국으로 하여금 이에 대한 조처를 하게끔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1850년에 보건당국에서는 배수시설과 하수처리 등 여러 종류의 수질관리의 개선책을 제시했으며, 특히 지속적인 물공급 체계를 도입할 것을 약속했다.

하수시설 설치로 수질 일시 개선

1852년에는 ‘대도시 수질법안(Metropolis Water Act)’이 통과되어 템즈강이 조수와 만나는 지역에서 물을 취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이를 시작으로 하수질을 관리하는 여러 후속조치들이 뒤따르게 되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시행한 사업은 하수시설이었으며, 이와 함께 템즈강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제방을 쌓았다. 이는 좁은 운하같은 것을 만들어 오염된 찌꺼기를 제거하여 강의 흐름을 막는 방해물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조치들로 일시적으로는 템즈강의 오염상태가 완화되기는 하였지만 오래가지 않아 또 다시 템즈강의 오염이 악화되기 시작하였으며, 노폐물 덩어리들이 진흙과 섞여 쌓여 강 유역에 둑을 형성하였다.

   

이렇게 템즈강의 오염현상이 악화될 무렵 템즈강에서 1878년에 Princess Alice호와 Bywell Castle호가 충돌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일부의 주장에 의하면 오염된 강물에 황화수소가 많았기 때문에 사망자 수가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사망자가 늘어난 직접적인 이유라고는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템즈강의 오염에 대하여 전국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결과 1852년에 ‘대도시 하수처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에서는 전문가를 비롯하여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부터 증언을 듣고 악취의 원인과 물고기가 죽어 가는 지점 등을 찾아내는 등 큰 성과를 거 두기 시작하였으나 과학적인 증거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다.

 
그 후 ‘대도시 사업국(Metropolitan Board of Works)’에 소속되어 있는 Dibdin이라는 화학자가 템즈강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암모니아 등의 오염물질들의 양을 측정하여 처음으로 수질오염에 대한 과학적인 자료를 제시했다. 그는 용존산소량과 BOD의 개념을 도입하여 오염물질이 많을수록 용존산소량이 감소하며, 이것으로 인하여 강 속의 물고기가 죽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과학적인 설명이 하수를 관리하는데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따라서 하수가 유입되는 지역에서 상당한 반경에 이르기까지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새로운 하수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기되었다. 즉, 배수되는 물을 따로 모아들이는 하수시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집된 하수를 여과와 침전의 방식을 사용하여 하수를 정화하여야 하며, 하수의 배출구도 바다 쪽에 설치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위원회의 결정에 의하면 템즈강으로 정화되지 않은 하수를 유입시켜서는 안되며, 하수를 침전시켜 슬러지를 제거하여 육지에 묻어야 하며, 또한 침전 후 걸러진 하수도를 직접 강으로 버려서는 안되며, 땅 속으로 흘려 여과시키거나 후속처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빗물은 하수와는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주장되었다. 이에 따라 런던의 하수시설이 전면적으로 개량됨으로써 1891년경에는 템즈강의 수질이 많이 향상되었으며, 종전에 사라졌던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템즈강, 1950년경 오염 최악

1900년 무렵부터 1950년경까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하수처리 시설 의 확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런던의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인구가 크게 팽창한 결과 산업폐수와 생활하수 그 외의 비점오염원이 확대됨으로써 1950년경에는 템즈강의 오염현황이 최악의 상태를 나타냈다. 강으로 유입되는 BOD가 높은 폐수 때문에 강의 용존산소량은 급격히 감소하게 되고,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연료부족으로 슬러지 처리장의 가동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며, 전후 복구과정에서 정부가 쓰레기 처리를 제때 하지 못하자 시민들이 쓰레기를 템즈강에 마구 버리기도 했으며, 또한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합성세제로 인하여 수질은 더욱 악화되게 되었다.


더구나 발전소에서 대기오염을 감소시키기 위해 아황산가스를 물에 씻어 내기 때문에 발전소 주변의 강물에는 고농도의 아황산염이 검출되기도 했으며, 발전소에서 방출하는 고온의 물 또한 수질오염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1950년대에는 템즈강의 주류에는 거의 산소가 없는 혐기상태가 되어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는 죽음의 강이 되어 버렸다. 또 유기물이 미생물에 의하여 부패되어 생물에게 해로운 황화물과 황화수소 등이 방출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템즈강의 이러한 최악의 상태를 인지하게 된 계기는 1951년에 있었던 영국축제에서 외국의 많은 배들이 템즈강에 정박하면서였다. 악취를 제거하기 위하여 염소를 다량 사용하였지만 거의 소용이 없었다. 이로써 더 이상 도시를 관통하고 있는 템즈강의 오염을 방치할 수는 없다는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런던시민들에게 최상의 삶을 제공하는 것이 런던의회의 역할이라고 할 때, 런던의회의 가장 급선무는 악취가 나지 않는 물을 런던 시민들에게 공급해 주는 일이었다. 이것이 시민들이 의회에 대한 가장 커다란 압력이었으며, 수질개선의 계기가 된 것이다.

생활하수가 오염 ‘주범’

그러나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가진 지방정부나 통제기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강은 이들만에 의해서는 깨끗해 질 수 없다. 템즈강의 회복은 강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연구해주고 대처 방안을 마련해준 과학자 등 전문가들의 협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본격적으로 템즈강을 살리기 위한 조치가 시작되면서 처음 구성된 것이 연구를 담당하는 ‘템즈조사위원회(The Thames Survey Committee)’와 강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Pippard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피파드위원회(Pippard Committee)’이었다. 템즈조사위원회에서는 기초조사부터 시작하여 10년 간 연구를 수행한 결과 템즈강의 오염물질은 주로 암모니아와 질산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그동안 산업폐수가 오염의 주원인이었지만 이제는 생활하수도 주요한 오염원이 되었으며, 일반 시민들 자신이 오염의 원인제공자라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 템즈강의 선상레스토랑.

이와 같은 사실이 명백해지자 ‘템즈조사위원회’는 건의서를 제출하여 무엇보다도 가 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하수처리 시설을 보강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수처리장 확장 공사를 여러 지역에서 실시하도록 하여 하수를 완전히 처리하여 템즈강으로 방류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영국정부는 1961년에 하천에 오물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1963년에는 「수자원법」을 제정하여 하천관리 전담부서를 각 지역별로 설치했다.


1970년대에는 공해 문제를 전담할 환경부를 세계 최초로 설치하였으며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를 구성하여 정기적으로 수질오염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들을 건의하였다. 이를 위한 예산도 확보하였고, 또한 강물의 질을 용존산소량을 기준으로 측정하여 강물이 어느 곳에서도 양질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모니터링하는 조치도 마련했다. NGO는 템즈강을 살리기위한 캠페인을 전개했고, 시민들은 생활하수오염을 줄이는데 노력을 해왔다.

용존산소결핍…강에 산소 주입

테임즈강 하구의 수질에 주요 인자는 여름에 급격하게 바뀌는 담수 흐름과 온도와 운하수의 유입이다. 런던의 하수관거 시스템은 19세기 중반에 설계됐기 때문에 우기에는 용량을 초과하여 배출된다. 여기에 담수역으로부터의 유기물 부하량도 증가하는 데다 상류 담수의 유입량은 상대적으로 감소하여 희석 효과를 감소시키므로 용존산소의 급격한 결핍을 초래하게 된다. 평상시의 용존산소의 감소폭보다 거의 ‘0’에 가까운 급경사된 결핍은 물고기가 죽는 원인이 된다.


런던의 하수관거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드는 비용은 수억 파운드가 드는 데다 공학적 문제점들도 노출돼 대체방법을 찾게 됐다. 용존산소 결핍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소의 직접 주입을 시행했는데 지난 1980년부터 ‘이동산소주입선’으로 하루 10톤의 산소를 주입했고, 1989년부터는 새로운 형태의 대형시설을 건설해 하루 30톤씩 산소를 주입했다. 이 장치의 총 크기는 592톤이고 길이 50.5m, 폭 10m로 운영비용은 1년에 약 25만 파운드가 소요되었다. 5월 초부터 10월 말까지인 여름기간 동안 폐·하수처리장 방류수에 의한 산소 요구 부하를 줄이기 위한 수질개선 노력에 합의했고 이 기간 동안 취수장에 취수 중단 요청권을 허가했다.


산소주입선의 운영 방식을 살펴보면, 산소 결핍의 정확한 모니터링과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 주입함이 가장 중요하고 산소 결핍을 수질 자동 모니터링 지점에서 측정, 그래프를 작성해 산소 결핍의 형성과 이동을 면밀하게 파악하다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몇 시간의 유예를 두고 산소 주입선이 가동된다. 용존산소가 가장 낮은 지점에 산소를 주입하며 모든 전개는 NRA 담당자가 통제하고 있다.


1989년에는 34일을 가동했으나 1993년에는 낮은 강우와 낮은 기온으로 인해 한 번 밖에 가동을 못했다. 1989년 산소주입선의 가동 이후 물고기 대량 폐사 사건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기상청과 밀접한 협조 아래 기상 강우 자료를 이용했다.


이처럼 의회에서는 시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것이 이들의 의무로 인식하여 적극적 으로 환경관련 법안을 정비하였고, 정부는 하수처리장을 늘려 하수를 관리하여 처리되지 않은 오수가 강으로 유입되지 않게 한 것은 물론, NGO는 오염방지 계도, 시민들은 자신이 오염의 원인제공자라는 것을 인식하여 생활하수 배출 등을 줄인 결과 템즈강의 물이 점차 개선되기 시작하여 1883년에 템즈강에서 자취를 감춘 연어가 드디어 1970년대 후반부터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템즈강은 이제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을 벗게 된 것이다.    <배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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