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법 제정 추진할 주체 없어
물관리, 지자체·민간에게 넘겨야


 

   
▲ 최동진 국토환경연구소 소장
물관리, 부처간·기관간 대립 심각

「물관리기본법」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논의와 다양한 형태의 노력을 거쳤음에도 통합 물관리의 초석인 물기본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물 기본법과 물관리 체계에 관한 논의에 상당 기간 참여해 오면서, 지금까지 「물관리기본법」 제정의 당위성을 부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물관리기본법」이 제정되지 못한 것은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다. 「물관리기본법」이 좌절되어 온 그 동안의 과정을 보면, 역설적으로 「물관리기본법」 제정의 시급성을 절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21세기를 물의 시대라고 하는데, 국가의 물관리의 기본원칙과 철학을 천명할 법 제정을 책임지고 추진할 주체가 없는 것이다.

「물관리기본법」 논의가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은, 이를 책임지고 추진할 기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당사자들인 물관리 체계와 관련된 부처, 기관, 이해그룹들이 자기중심적 사고와 처신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관리를 둘러싼 부처간, 기관간 대립이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 섰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대강 정비사업의 추진과정에서도 부처간 엇박자와 물관리 분야간 연계성 부족 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물관리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에게 최대한 많이 넘겨야 한다. 물론 갈수록 중요해지는 통합적인 계획과 강력한 조정기능은 오히려 중앙정부의 기능이 강화될 필요가 있지만, 사업과 관련된 부분은 가능한 부처에서 놓아야 한다.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를 비롯한 환경관리공단, 한국농촌공사 등의 경우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할 시기가 됐다. 너무 기업논리와 조직논리에 치우쳐 있다. 본래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과감하게 개편할 필요가 있다.

국가 전체가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시기에, 물관리 부처들과 기관들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임한다는 관점에서 「물관리기본법」을 제정하고 물관리 체계 개편에 임해야 한다. 부처 업무를 확장하거나 기존 사업을 유지하려는 관점에서 벗어나, 중복된 업무를 과감하게 통합 조정하고, 불필요한 업무를 없애야 한다.

‘유역위원회’ 역할 매우 중요

지금까지 제안된 「물관리기본법」은 모두 국가물관리위원회와 물관리기본계획의 수립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국가물관리위원회에 대해서는 물관리체계 개편과 관련해서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조정기구인 국가물관리위원회가 만들었지만 오히려 물관리 일원화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이를 반대하기도 한다.

현재와 같이 부처가 갈라진 상태에서 물관리일원화 논의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인가 아니면 통합적인 논의가 가능한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는 현재 부처별로 따로 추진되고 있는 주요한 문제들에 대한 통합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물산업 육성 및 수도사업의 구조개편에 관한 문제, 물값과 수리권체계의 개편에 관한 문제, 물 관련 기금 및 비용분담 체계의 조정에 관한 사항, 기후변화에 대한 물 분야 대응 등의 문제가 특별위원회나 전문위원회 형태로 검토돼야 한다.

이러한 사안들은 현재 여러 부처가 기관에서 서로 연계성이 없이 논의 진행되고 있어서 소모적이고 중복적인 논의로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의 임기를 7년으로 설정한 것은 너무 길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안정성을 위해서는 임기를 늘리기보다는 위원의 임명 시기를 서로 달리하는 방안이 더 합리적이다.

권역위원회의 제안은 과거의 기본법안에 비해서 진일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법안에서는 부처간 협의 과정에서 유역위원회의 기능이 유명무실화되거나 삭제됐다. 유역위원회 혹은 권역위원회의 필요성과 현실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통합 유역관리는 국제적인 대세이며 미래 물관리 체계의 지향점이다. 통합 유역관리를 위해서는 유역위원회든 권역위원회든 어떤 명칭이든지 그러한 형태의 조직이 필요하다. 당장은 현실적인 제약과 한계가 있더라도 가능한 그 기능과 역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유역위원회는 중앙정부의 역할 중 상당부분을 지방 혹은 유역으로 이관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국토해양부나 환경부 모두가 달갑지 않게 생각해서 법 제정의 초창기에는 당위성 때문에 들어가 있다가, 부처간 협의 과정에서 슬그머니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향후 물관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조직이 유역위원회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구성이 되어야 한다.

정치권의 역할, 특히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관리 체계 개편 논의의 민감성 때문에 정부가 발의하는 형태로 기본법이 제정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 부처간, 기관간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에서 의원입법 형태로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회에서 열린 여러 차례의 「물관리기본법」 토론회와 심포지움 등에서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결 같이 기본법 제정의 취지에 동의하고 이를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약속을 해왔는데 그 약속들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예를 들어, 지난 국회 때 환경노동위원회의 「물관리기본법」 관련 토론회에 참여하셨던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물관리기본법」의 제정을 약속했다. 당시 환경노동위원장은 정부가 바뀌면 인수위원회 초기에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었는데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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