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재앙 관리하는 수석학자직(織) 필요


▲ 류재근 박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새로운 일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되풀이되는 경우에도 그 정황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서울 노원구의 아스팔트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환경사안이지만 그냥 흘려 넘길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북한강상류 의암호에서 남조류인 아나베나(Anabena)가 발생해 2천500만 명의 식수원인 팔당호로 확산됐다. 이로 인해 수돗물에서 냄새가 나고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아직까지 그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현 상태로는 녹조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찾기가 어렵다고 본다.

새로운 환경문제에 대비해야 하는 공무원 등 담담자들도 단순히 이전의 지식과 경험에만 의존해서는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과거와 달리 요즘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 성과는 영어로 발표된다. 영어는 이제 비영어권 국가에서도 보편적 언어가 됐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더 이상 이전 사례에서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환경 현안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새로운 환경지식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필수이다.

호주에는 연방 정부의 수상이나 지방 정부 수장에게 독립적인 입장에서 과학·기술에 관한 자문을 제공하는 ‘수석과학자’라는 직책이 있다. 이는 수상의 자문역으로, 호주 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 for australia)라고 불린다.

수석과학자 직책은 정부가 과학자의 자문을 받기 위해 만들어졌다. 날로 더 복잡해지는 문제에 대한 도전과 기회에 직면해 있는 국가가 향후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독립적이며 최고 수준에 있는 과학자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위급 과학자문관을 임명해 독립적인 자문을 받는 정부는 영국 등 개별국가뿐만이 아니다. 유럽연합에서도 2009년 준비를 시작해 지난해 12월5일 수석과학자문관을 임명했다. 이 직책은 유럽연합의 정책과 입법체계가 원숙한 과학적 기반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미국 해군에는 수석해양학자(Oceanographer of the navy)가 있다. 이는 해상 군사작전에 필요한 해양 수로, 기상, 지리정보, 천문 등 해양환경정보를 지휘관에게 자문해 준다. 세계은행에서도 국제, 지역 및 개별국가 차원에서 은행의 전반적인 행동 방향에 지적 리더십을 제공하는 수석경제학자(Chief economist)가 있다.

이렇게 행정직에 학자를 칭하는 호칭이 포함되면 생산된 지식을 실제 행정에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행위를 촉진시킬 수 있다. 또 산호초 등 자연경관을 자산으로 리조트를 경영하는 해외 업체들의 경우 수석생태학자(Chief ecologist)라는 직책을 둠으로써 회사는 생태학적 전문지식을 쉽게 사업에 활용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영어로 된 환경과학 지식의 첨단 현황을 수집하고 분석해 실제 당면한 환경사안을 해결하는 데 활용하는 특별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장치의 하나로 수석환경학자직 신설이 필요하다 하겠다.

일상적인 행정 부담을 부과하지 않고 구내 식당에서나 커피점에서 전문지식을 시장이나 군수에게 직접 전달하고 자문해 줄 수 있는 수석환경학자직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에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최첨단 지식을 수집하고 현안에 대한 합의를 파악하는 일 또한 과학연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구제역, 조류 독감, 광우병, 지진해일, 태풍, 멧돼지의 도심 출현 사태 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깊은 학문적 통찰이 필요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500년 전, 중국의 손자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이면 백전불태(白戰不殆)이고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이면 매전필패(每戰必敗)라고 했다(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 조차도 모르면 싸움에 반드시 진다). 우리 사회는 항상 새로운 도전과 기회에 노출되어 있다. 환경과학지식의 활용이 당면하는 도전을 다스리고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워터저널』 2012.10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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