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

천년도읍으로 검증된 우리나라 물관리 방법 계승하자

고구려나 로마시대 유적지 비밀

고구려 등 옛 성이나 로마시대 도시 등의 유적지를 발굴하여 보면 한결같은 공통점

   
이 있다. 우물터나 수로 등 물공급 시설과 배수시설이 반드시 발굴된다는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시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생각하여야 할 것은 안전한 물의 공급과 하수의 배제와 같은 물관리인 것을 알 수 있다.

물이 없으면 단 며칠을 버티기가 어렵다. 고대도시가 오랫동안 존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물관리를 잘하였기 때문이고, 당연히 최고 통치자는 물을 공급하는 수단과 방법을 잘 알고 있어야만 하였다.

물이 도시 지속성에 미친 영향

바꾸어 말하면 도시의 성장과 지속의 한계는 바로 지속적인 물의 공급 능력에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약간 억지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 사례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의 도시에서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수원에서부터 수로를 통하여 물을 공급하여 조경이나 목욕 등 현대 사람들도 부러워할 만한 최고의 문화를 누렸다. 그 규모는 일인당 하루 1000리터 정도 써도 될 만큼의 용량이었다.(현대사회에서는 약 300∼400L 사용)

수로의 건설은 물론이고, 유지하고, 외침으로부터 보호하기에는 꽤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로마의 전성기 때는 가능하였다. 그러나 물을 많이 쓰고, 물의 의존도가 높다보니 수로가 폐쇄되는 날이면 도시의 사람들의 불행은 극에 달하게 된다.

따라서 로마시대의 정치가와 군인들의 임무는 성을 지키는 것보다는 수십 킬로에 달하는 수로와 그 수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였을 것이다. 로마의 쇠퇴기에는 이것이 큰 재정적 부담이 되었고 이것이 로마를 망하게 하는 간접적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매우 번성하였다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도시는 그대로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많은 추측이 있겠지만 물에 관한 설도 있다. 발달된 관개 기술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물을 끌어 농사를 지어 왔는데 땅 밑에 있는 암염이 서서히 녹아나와 염도가 높아져서 어느 한 순간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서 몰락하였다는 설이다.

지금도 이라크 지역에는 땅을 조금만파면 소금층이 나온다. 안전한 수질의 물의 공급이 도시의 지속성에 미치는 영향을 말해준다.

과거나 현대의 대도시들은 대개 하천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을 비롯하여 워싱턴, 뉴욕, 파리, 런던 등의 대도시를 보면 모두 다 하천을 끼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물 공급의 용이성 때문이다. 도시에서 사용할만한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의 어느 도시의 강은 수질오염 때문에 매우 지저분한 것을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재정적인 부담을 안고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간다.

물 중요성은 현대도 마찬가지

쉽게 생각하여 한 달쯤 야영을 한다고 할 때 리더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물의 확보이다. 물이 없으면 생존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만약 물이 멀리 있으면 그만큼 물을 길어 오는 노력이 들기 때문이고, 만약 물의 공급을 남에게 의존하였을 때 불의의 사태에 대한 위험부담을 감수하여야 한다.

불의의 사태란 갑자기 물 값을 10배로 내라고 한다든지, 물을 공급을 하지 못하겠다고 통보를 한다든지, 일시적으로 수질이 나빠질 때를 이야기한다. 잘못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최근 들어 동력이 개발된 후, 인간은 멀리서라도 물을 끌어올 수 있어서 물공급 계획이 자유롭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생각하여야 할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즉, 우리도 좋고 우리자손들도 부담 없을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댐이나 펌프장과 같은 거대한 시설은 언젠가는 망가진다. 수명이 100년이라면 100년 동안 유지관리비를 내야하고 이후에는 다시 만들어야 한다. 동력을 이용하면 편하지만, 기름값이 오를 때마다 산유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며 재정적, 정치적 의존을 하게 된다. 우리는 편하게 즐기다 가면 그만이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사랑스런 아들딸과 후손들의 몫이 된다.

우리 선조들의 물관리 비밀

우리나라의 많은 고대도시들이 수천년을 지속해 온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의 지속가능한 물관리는 거의 상식처럼 자리 잡아 오지 않았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수천년을 이어온 검증된 기술이라고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라의 경주는 대단하다. 근처에 큰 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000년의 도읍을 하였고, 한창 번성할 때에는 약 90만 명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를 보아도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이 거주하고 번성한 도시는 많지 않다.

여기에 우리 선조들의 물 관리의 비밀이 있다. 아마도 근처에 저수지나 수로가 없었다면 모두 다 물을 자급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물자급율이 100% 인 것이다. 최대한 물을 절약하고 비가 오면 침투시켜 땅속에 저장시키도록 하고, 집집마다 우물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분뇨나 하수에 의한 우물물의 오염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경주지역의 강우특성, 그리고 토양특성을 잘 살펴서 빗물을 모아 물을 자급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물관리에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천년도시의 물관리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적인 노하우는 잘 발굴하여 전 세계에 전파할만한 가치가 있다. 어떠한 도시치고 물을 안 쓰는 도시는 없고, 도시를 만들 때 유지관리비가 적게 들어 천년이상을 가도록 하는 도시를 목표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도시나 재개발시 고려사항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는 새로 도시를 짓거나 재개발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것을 위해 전 세계의 가장 유명한 설계자들의 아이디어를 많은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것을 계획할 때 반드시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잊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새로 도시를 계획할 때 물 관리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첫 번째는 우리의 강우특성을 생각하고 토양특성과 생활습관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둘째는 시간의 검증을 받은 것이어야 한다. 셋째는 시설의 노후화나 에너지의 부담을 최소한으로 주어야 한다. 넷째는 물 자급율을 최대로 높여야 한다. 다섯째는 이 개발이 하류의 홍수와 가뭄을 유발하지 않는 방향으로 하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떨어지는 빗물을 잘 관리하면 이루어지는 일이다.

만약 삼국시대의 토목기술자가 되살아 와서 도시설계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아마도 외국의 어느 기술자보다도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한 기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나라에서 고대의 유적지를 발굴할 때, 거기서 물관리의 노하우를 발굴하여 적용하여보자. 여기에는 단순히 기술뿐만이 아니라 생활의 습관이나 제도,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한 철학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천년 이상 검증된 우리 실력, 당할자 누구인가?

이러한 검증된 노하우를 기존의 도시를 운영할 때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때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 옛날의 노하우에 약간의 현대적인 것을 가미한다면 당장 적용이 가능하며, 다음 천년을 잘 살수 있는 기술이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기술과 철학은 외국의 신도시를 만들 때 진출할 수 있다.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최악의 기후조건에서 천년의 도시를 유지해온 검증된 실력이라면 전 세계의 누구와 겨루어도 이길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를 앞두고 지속적인 도시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모두 다 우리나라의 검증된 기술을 벤치마킹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한무영 교수 ■

·서울대 토목공학과 및 대학원 석사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 공학박사(환경공학 전공)
·경희대 토목공학과 부교수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환경부 상하수도 자문위원(현)
·「워터저널」 편집위원(현)
·UNEP-SNU 빗물연구센터장(현)

저작권자 © 워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