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공단 인근 주민, 폐수오염으로 인한 양식 피해
33억원 손해배상소송 파기환송…1, 2심선 원고패소

대법원이 “기업의 폐수방류 문제를 둘러싸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을 경우 폐수 방류가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책임은 기업에 있다”는 확정판결이 내려져, 대기·수질오염 등 공해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에서 가해자가 배출물질의 무해함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배기원 대법관)는 지난 12월 2일 전남 여천공단 인근의 재첩 양식업자 주모씨 등이 “여천공단의 폐수 중 페놀성분이 양식장에 흘러드는 바람에 양식을 망쳤다”며 13개 여천공단 입주업체를 상대로 낸 33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해로 인한 손배소에서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자연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곤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가해기업은 기술적.경제적으로 피해자보다 원인조사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배출한 물질이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사회적 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가해기업이 배출한 물질이 피해 물건에 도달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가해자측에서 무해함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사회 형평의 관념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1988년께 여천공단의 폐수로 광양만 수질이 오염됐고 이 해수가 양식장으로 유입됐다는 점이 인정되는 만큼 폐수와 양식피해간 인과관계가 어느정도 증명됐다”며 “피고가 폐수의 무해함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씨 등은 86년 전남 여천시 일대에서 양식면허를 얻어 재첩 양식업에 종사해 왔으나 88년부터 수확량이 감소하기 시작, 1991년에는 양식을 포기할 상황에 이르자 인근 여천공단 입주업체들의 폐수방류 때문이라며 소송을 냈다.

1, 2심 법원은 이들 업체의 공장에서 페놀 등 폐수가 배출돼 일부가 양식장으로 흘러든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페놀 추정치가 재첩 생육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었고 당시 발생한 가뭄이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등으로 패소판결 했다.

이번 판결은 대기·수질오염 등 공해로 인한 손배소에서 가해자가 배출물질의 무해함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배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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