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견학기


“호수 최대 투명도 42m의 ‘바이칼호’
 그곳에서 지구상 가장 깨끗한 물 만나다”

국내 최초 바이칼호 수질분석…1L 무균병 2개에 바이칼호 물 채수
일반·음이온·미네랄·중금속 항목 모두 ‘양호’…수질 세계적 수준


▲ 류 재 근 박사
· 전 국립환경과학원 호소수질연구소(현 한강물환경연구소) 초대 소장
· 전 한국환경분석학회 초대 회장(현 명예회장)
· 전 한국물환경학회 9대 회장(현 고문)
· 전 한국자연보전협회 회장(23~24대)
· 전 국립환경과학원 10대 원장(현 자문위원)
· 현 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
 7월 24일∼29일 러시아 바이칼호를 다녀와서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호

지난 7월 24일부터 29일까지 국내 최초로 바이칼호(Lake Baikal)의 수질을 알아보기 위해 러시아로 향했다. 바이칼호는 이름만 알려졌을 뿐, 자세한 정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호수가 있지만 시베리아의 오지에 숨어 있는 바이칼호만큼 관심을 끄는 호수는 드물다. 이 호수는 달리 부르는 이름도 많아서 ‘성스러운 시원(始原)’, ‘성스러운 바다’, ‘세계의 민물창고’, ‘시베리아의 푸른 눈’, ‘시베리아의 진주’ 등으로 불린다. 특히 깊은 오지에 묻혀 있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로 남아 있다. 실제 바이칼호의 수질분석을 한 결과 매우 청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바이칼호에는 2천600여 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199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매력을 지닌 바이칼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한다.

‘자연’을 뜻하는 몽골어 ‘바이갈’서 유래

바이칼호는 시베리아 남동쪽, 이르쿠츠크(Irkutsk)와 브랴티야(Buryatia) 자치공화국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2천500만 년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호수다. 바이칼이라는 명칭은 ‘자연’을 뜻하는 몽골어 ‘바이갈(Baigal, 러시아어로는 Байгал)’에서 유래했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주변은 2천m급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러시아에 속해 있지만 우리나라와의 거리는 약 2천327㎞로 그리 멀지 않다.

바이칼호는 길이가 636㎞, 평균 너비가 48㎞(최장너비 79㎞, 최단너비 27㎞)에 달한다. 면적은 약 3만1천500㎢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호수다. 이는 우리나라 면적의 3분의 1(약 3만1천500㎢)에 해당하는 크기다.

또한 바이칼호는 수심이 1천742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육지 깊은 곳에 위치한 바이칼호의 바닥은 바다표면보다 1천295m가량 낮은데, 이는 주변 산꼭대기로부터 약 3천750m 낮은 위치에 호수의 밑바닥이 있는 셈이다.

수심이 깊을 뿐 아니라 물도 상당히 맑아서 물 밑 가시거리(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체까지의 거리)가 최고 40.5m에 이른다. 호수의 최대 투명도는 42m로 물 밑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 호수에는 전 세계 민물(담수)의 5분의 1이 담겨 있다. 바이칼호의 표면적은 북아메리카 오대호(Great Lakes)의 13%밖에 안 되지만 물의 양은 오대호를 합친 양보다 3배나 더 많아 ‘세계의 민물창고’라고 불린다. 또 저수량이 2만2천㎦로 담수호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전 세계 담수량의 20%, 러시아 전체 담수량의 90%를 차지한다.

바이칼호에는 약 336개의 강에서 물이 흘러들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안가라(Angara)강 하나뿐이다. 과거 춘천 소양강이 빠르게 흘렀던 것처럼, 안가라강은 폭이 넓고 유속도 빠른 편이다. 이 물은 시베리아의 예니세이(Yenisei)강으로 합류되어 북극해로 흘러든다. 언젠가 바이칼호의 깨끗한 물이 먹는 물로 포장되어 우리나라까지 올지도 모르겠다.

▲ 바이칼호는 수심이 깊을 뿐 아니라 물도 상당히 맑아서 물 밑 가시거리가 최고 40.5m에 이른다.

바이칼에 숨어있는 우리 민족의 뿌리

호수 주변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부랴트(Buryat)족은 인구 40만의 소수민족으로서 자치공화국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설화를 갖고 있으며 그들이 간직한 샤머니즘의 원형은 우리 민족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곳에 우리 민족의 뿌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드넓은 초원을 달리다 보면 오색 천 조각을 두른 나무 말뚝을 수없이 만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솟대나 서낭당과 비슷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부랴트 족도 우리의 ‘개똥이’처럼 아기에게 천한 이름을 지어 주어야 오래 산다고 믿어 ‘개’라는 뜻의 ‘사바까’란 이름이 흔하다고 한다. 또 아기를 낳으면 탯줄을 문지방 아래 묻는 전통도 우리와 비슷하다. 그들이 추는 춤은 강강술래와 비슷하며, 예전의 샤먼이 썼던 모자는 사슴뿔 모양으로 신라의 왕관과 비슷하다.

▲ 바이칼호의 드넓은 초원을 달리다 보면 오색 천 조각을 두른 나무 말뚝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솟대나 서낭당과 비슷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진은 엽서사진.

먼 옛날, 부랴트족은 바이칼호의 성난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매년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인 ‘심청전’과도 비슷하다. 더불어 ‘선녀와 나무꾼’ 등 다양한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들이 바이칼에서부터 시작되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칼호에 발을 담그기만 해도 5년, 수영을 하면 10년, 목욕을 하면 영원히 젊어진다는 전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소설 『유정』의 작가 춘원(春園) 이광수 역시 바이칼과 인연이 깊다. 톨스토이의 문예에 깊은 관심이 있던 그는 직접 러시아로 건너가 생활하며 집필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부랴트족은 17세기에 시베리아를 정복한 러시아에 동화되면서 ‘부랴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남쪽 국경 너머 몽골과 중국 북부의 몽골인과 뿌리가 같고 언어도 비슷하다. 유목민인 이들은 자신들을 칭기즈 칸(Chingiz Khan)의 후예로 믿고 있기도 하다. 
 
2천500여종 동식물의 삶의 터전

바이칼호의 맑은 물과 다양한 생물, 많은 온천은 빙하기에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던 초기 도래인에게는 좋은 안식처가 됐을 것이다. 특히 호수 주변에는 온천이 많다. 1990년 미소 합동 조사단이 잠수함을 타고 수심 420m까지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을 발견했다고 한다.

바이칼호는 지구가 갈라질 당시인 2천500만∼3천만 년 전부터 생성된 것으로, 북쪽의 땅은 융기하고 남쪽은 벌어지는 단층 운동에 의해 형성됐다고 한다. 지금도 호수 주변에서는 매년 3천 번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는데, 이 때문에 호수 주변은 매년 1㎝씩 융기하고 호수는 2㎝씩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바이칼호에는 2천500여 종의 동식물이 사는데 이 중 상당수가 이 호수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 ‘네르파’(Nerpa, Lake Baikal seal)를 비롯해 연어과 어류 ‘오믈’(Omul), 러시아 여울어종인 하리우스 등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어종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바이칼호는 생성된 지 오래된 데다, 일반적인 호수와 달리 수심 깊은 곳까지 산소가 공급되고 자체정화능력이 뛰어나 생물다양성이 높다.

한편, 러시아의 사우나에는 우리나라 사우나에서 사용하는 쑥이나 약초 등의 다발과 같이 자작나무 줄기를 다발로 만들어 3∼4개 정도 비치하고, 70∼80℃ 정도로 온도를 맞추고 있다. 이 곳에서 목욕을 즐기고 바이칼과 자작나무를 담은 전경그림과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 바이칼호에는 2천500여 종의 동식물이 사는데 이 중 상당수가 이 호수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사진은 바이칼 호에만 서식하는 세계 유일의 민물 바다표범 네르파(Nerpa).

국내 먹는물 수질기준 모두 만족

바이칼호의 수질을 알아보기 위해 미리 1L짜리 무균병 두 병을 준비했다. 호수 인근의 리스트반카(Listvyanka) 지역 선착장에 도착하여 무균병에 물을 채수한 후 완전히 밀봉해 냉장보관하여 안전하게 이송했다. 유람선을 타고 리스트반카 선착장에서 반경 4㎞까지 둘러보기도 했는데, 유람선 뒤 스크류에서 새하얀 물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과연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 불릴 만큼 깨끗한 호수였다.

▲ 리스트반카 선착장에서 바라본 바이칼호 유람선.
▲ 유람선을 타고 리스트반카 선착장에서 반경 4㎞까지 둘러보기도 했는데, 유람선 뒤 스크류에서 새하얀 물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과연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 불릴 만큼 깨끗한 호수였다.

한국에 돌아와 국립환경과학원에 시료를 분석결과를 의뢰했다. 그 결과 바이칼호의 물은 우리나라 먹는물(수돗물) 수질기준을 모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일반항목 수치가 매우 양호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화학적산소요구량(COD)과 총유기탄소량(TOC)이 각각 1.9㎎/L, 1.3㎎/L으로 깨끗한 호소수와 같게 나타났으며 물 속 탁도(NTU)는 0.36NTU으로 상수처리한 물과 같게 나타났다. 총질소(T-N)는 1.6㎎/L으로 우리나라 호소수보다 깨끗하게 나타났다. 특히, 암모니아성 질소(NH4-N)는 0.01㎎/L 정도로 극미량 검출됐는데, 현재로서는 유기성 오염이 없는 아주 깨끗한 호수로 판단된다. 총인(T-P)은 0.030㎎/L 정도로, 우리나라의 팔당댐, 소양댐, 대청댐, 안동댐 등 인공호보다 깨끗한 수질을 나타나고 있었다.

 
음이온 분석항목 결과에서는 불소(F)가 0.2㎎/L로 먹는샘물(생수) 기준에 아주 적합한 상태로 나타났다. 이는 백두산 천지의 물보다도 적은 수치다. 질산성질소(NO3-)는 검출되지 않았는데, 이는 아직까지 바이칼호의 물에 유기물질이 혼입(오염)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축산 농가 인근의 하천과 호수의 물은 대부분 0.3㎎/L 이상이다. 심한 곳은 5㎎/L 이상 검출되는 곳도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바이칼호는 아주 깨끗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체 건강과 연관이 있는 미네랄 항목 검사에서는 칼륨(K) 0.593㎎/L, 칼슘(Ca) 12.393㎎/L, 나트륨(Na) 2.893㎎/L, 마그네슘(Mg) 2.760㎎/L 등 이온이 골고루 들어있고 먹는샘물 기준에도 매우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칼호의 생태계가 냉수성 어류가 잘 번식하는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심지어 물을 채수한 곳이 선창가임에도 수질은 매우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세계적인 미네랄워터로서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아울러 중금속(17항목) 함량을 조사한 결과, 모두 수질기준에 적합한 상태로 나왔으며, 아예 검출되지 않은 항목도 있었다. 크롬(Cr), 망간(Mn), 구리(Cu), 철(Fe), 비소(As) , 안티몬(Sb), 니켈(Ni) 등은 모두 불검출로 나타났다. 검출된 항목은 바륨(Ba) 0.010㎎/L, 붕소(B) 5.996㎎/L, 몰리브덴(Mo) 1.639㎎/L, 바나듐(V) 0.513㎎/L 등이었다. 바이칼호에 다양한 생물들이 오랫동안 서식하고 번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유해성 중금속이 없고, 생물에 유익한 중금속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청정 수질의 비결은 12℃ 이하 저수온

▲ 안가라강 유속을 살피는 류재근 박사.
이처럼 바이칼호의 수질이 깨끗한 데에는 수온의 영향이 큰 것으로 사료된다. 바이칼호의 여름철 수온은 평균 10∼12℃로 낮은 편이다. 이 정도 수온에서는 저온성 녹조류(녹색 조류, 냉수성 조류)만 서식할 수 있다.

게다가 12℃ 이하의 수온에서는 녹조가 증식하지 않아 부영양화가 발생하기 어렵고, 저온성 녹조는 보통 냉수성 어류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수질오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냉수성 어류는 15℃ 이하의 수온에 적합한 어류를 말하며 연어, 송어, 다랑어, 청어 등이 이에 속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하천이나 호소(댐)의 7∼8월 수온은 대개 20∼30℃까지 상승한다. 올해에는 평년보다 0.5∼1.5℃가량 더 높았다. 이와 같은 고수온 환경에서는 물의 체류지역에 마이크로시스틴(Mycrocystine)이나 아나베나(Anabena) 등 남조류가 다량 발생하여 녹조가 빠른 속도로 증식하고 호수의 부영양화를 촉진한다.

이 밖에 바이칼호 주변에 줄이나 애기부들 등이 많이 서식하지 않은 이유는 현재 수질오염이 진행되지 않고 여전히 깨끗한 수질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조사에서 나타났다. 또 돌이나 바위에 붙어사는 조류(algae)는 저온성 녹조류였고, 돌이나 모래에 살고 있는 저서생물로는 민물새우(epischura), 강도래, 하루살이 유충 등이 관찰되었다.

다만, 현재 바이칼호에는 336여 개의 강에서 물이 흘러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강 유역에 위치한 채굴광산(석탄, 금 등)으로부터 유입되는 수질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특히 바이칼호 주변의 마을이나 도시에는 하수처리체계가 부족한 편으로, 하수처리시스템과 폐기물 쓰레기 처리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하다. 바이칼호에는 최근 몇 년간 관광객이 늘고 있다. 언제라도 심각한 수질오염이 발생할 수 있으니 항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워터저널』 2018년 9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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