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수기술과 수도관 품질·시공능력은 선진국 수준

잘못된 수돗물 인식으로 비싼  ‘인식비용’  지불


“먹는물의 원수는 ‘1급수’ 라야 한다는 생각 팽배…과학적으로 볼 때 BOD 1.0㎎/L와 1.1㎎/L 차이는 무의미”


 
“수돗물을 먹으면 오래 못산다고 하던데?…”
지금도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6대 4정도로 부정적이다.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는 인구가 1% 내외라는 설문조사결과는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극심한 불신을 나타내는 수치다. 때문에 수돗물 대신 비싼 먹는 샘물(생수)을 사서 먹기도 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거나 막연히 ‘몸에 좋다’라는 근거 없는 말을 듣고 이른바 ‘약수터 물’을 길어서 먹는 사람들이 있다.

“수돗물에는 중금속인가 뭔가 하고 병균이 많아서 먹으면 죽는다고 그러던 데…” 한 친척할머니의 말씀이다.

“누가 그런 말을 해요?”  필자의 물음에 할머니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진다.

“저수조에 쓰다버린 페인트 통이 빠져있지 않나, 벌레나 동물의 시체가 빠져있지 않나 그리고 그저께 이웃집에 놀러 갔는데 무슨 회사 외판원이 그 집 수돗물에 전기를 통하니까 흉측스럽게 보이는 붉은 색 물질이 생기던데, 그걸 보고 어떻게 수돗물을 먹어?”필자의 반문에 대한 할머니의 대답이다.

식구가 단출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그 할머니는 먹는 물과 조리용 물은 먹는 샘물을 사용한다.


잘못 알아 지불하는 불필요한 비용

인식비용(perception costs)이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잘못된 인식 때문에 지불하는 불필요하고 자원 낭비적인 개인적, 사회적 비용을 말하는데, 수돗물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우리가 지불하는 인식비용은 막대하다. 우리가 수돗물의 수질을 믿는다면 먹는 샘물의 수요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먹는 샘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물질과 에너지자원을 필요로 한다. 먹는 샘물의 원료인 지하수를 퍼 올리기 위해서는 양수시설과 에너지가 필요하며, 퍼 올린 물을 정수하기 위해서도 정수시설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정수된 물을 병에 넣기 위해서는 큰 공장건물과 물을 병에 넣어 마개를 닫아 제품을 생산하는 일관공정을 가진 공장이 설치되어야 한다. 여기에도 막대한 물질과 에너지자원이 소비된다.

또한 생산된 제품을 트럭 등을 이용해 먼길을 운반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특히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소비된 후 발생한 생수병은 수거하여 재활용해야 한다. 재활용에도 물질과 에너지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돗물을 먹는다면 이러한 낭비적인 물질과 에너지자원을 많이 절약해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사회전체의 복지를 한 층 더 향상시킬 수 있다.

한 번 뇌리에 각인된 인식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필자의 집에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강아지가 평가하는 식구들의 서열은 일반적으로 엄마, 딸, 아들, 그리고 맨 꽁지가 아버지라고 한다. 필자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성격이라 어느 날 딸애가 친구한테서 분양 받아 온 그 강아지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방분방뇨(放糞放尿) 버릇이 채 들기 전인 어린 강아지 때, 필자는 가끔 그 버릇을 고치기 위해 회초리를 들고 강아지를 위협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정이 많이 들어 식구들 중에 필자가 강아지 밥을 가장 많이 주고 고기 점 같은 것은 입 속에 있던 것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도 강아지가 평가하는 필자의 서열은 한 계단도 더 올라가지 못했다. 어릴 때의 ‘회초리 인식’이 ‘영원한 꼴찌’로 만든 것이다. 참 무서운 인식이다.

과학·기술로 해결 못하는 ‘인식의 벽’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으니까 정부는 그 주요원인의 하나인 수도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외수도관을 개량함은 물론 옥내수도관에 대해서도 청소의무를 부과하는 법을 만들었다. 또 좁은 수도관 속을 돌아다니면서 오염물질을 청소하는 ‘소형자동청소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10여 년 전 환경부 상하수도국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정수장에서 생산된 물은 모든 수질기준을 만족하기 때문에 적어도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수장 물이 가정까지 가는 과정에서 수도관 노후, 파열, 저수조 오염 등의 문제 때문에 수돗물이 오염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오염가능 물질은 수도관의 녹물과 같은 부유물질, 파손된 수도관으로 침투한 병원성 미생물 등이다. 새로운 소재의 수도관으로 노후수도관을 교체하면 유해한 녹물의 발생이나 미생물의 침투를 방지할 수 있다. 새로 짓는 주택이나 아파트는 신소재로 된 수도관을 사용하기 때문에 저수조의 청소만 철저히 한다면 수돗물을 그대로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과학적, 실재적으로 이것은 사실이고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수돗물에 대한 사람들의 뿌리 깊은 ‘인식’은 쉽게 바꾸어지지 않는다. 역시 결론은 이해가 아닌 인식의 문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수돗물을 먹게 하기 위해 정수기를 사용하면 어떨까? 정수기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어느 정도 쌓여 있기 때문에 정수기를 권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정수기를 사용하면, 건강자체에는 해롭지 않으나 심미적 수질항목인 부유물질을 제거하고 냄새, 맛 등을 순화하여 실제로 수질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돗물정책을 담당하는 상하수도국장이 공공연하게 정수기 사용을 권장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수돗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수돗물을 먹기는 하되 정수기를 사용한다는 분들과 끓여서 먹는다는 분들이 각각 40% 정도다. 끓여서 먹는 분들은 병원성 미생물에 대한 공포스런 인식이 있는 분들이고, 정수해서 먹는다는 분들은 주로 심미적인 요소에 신경을 쓰는 분들이다.  어쨌든 수돗물을 끓이고 정수기를 사용하면서 수돗물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이다.

“1급수만 좋은물”  인식은 잘못

우리나라 정수시설의 수준과 그곳에 종사하는 인력의 전문성, 수질분석능력 등은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조금의 손색이 없다. 수도관의 개량 등 수돗물 분배시설의 개량과 청결유지를 위한 노력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수도관의 파손과 청결유지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수도관의 재질과 수도관 설치기술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것일 것이다.

▲ 수질개선을 위한 더 이상의 투자로 수질을 ‘BOD 1급수(1.0㎎/L 이하)’로 만드는 것은 귀중한 국가재원의 낭비가 될 수 있다. 다만, 추가적인 상류지역의 개발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수질오염물질 총량관리가 필요하다. 사진은 남양주시 화도면 일대의 북한강 전경.
우리는 수돗물과 관련해 또 하나의 비싼 인식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바로 하천이나 호소에서 취수하는 상수원수의 수질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먹는물의 상수원수는 ‘1급수’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1급수’는 ‘깨끗한 물’, ‘좋은 물’이고, ‘2급수’ 이하면 ‘더러운 물’, ‘나쁜 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을 상수원수의 등급을 정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과학적으로 많이 잘못된 것이다. 1급수란 BOD를 기준으로 1.0㎎/L 이하인 물을 말한다. BOD가 1.0㎎/L을 조금이라도 초과하면 그 물은 2급수가 되고 만다. 예를 들어, 0.1㎎/L의 차이로 ‘좋은 물’이 갑자기 ‘나쁜 물’이 되어 사람들의 인식세계에서는 ‘못 먹는 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볼 때 BOD 1.0㎎/L와 1.1㎎/L와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BOD를 상수원수의 수질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는 나라도 그 허용기준을 3.0㎎/L 정도로 정하고, 이것을 ‘1급수’로 부르고 있다. 그 정도의 농도면 정수과정을 거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주요 상수원수 수질, 큰 문제없어

우리나라 수도권 인구 2천500만 명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주요 상수원 중의 하나인 팔당호의 BOD는 2006년 연평균 1.2㎎/L 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상수원수 기준으로 보아도 그야말로 거의 ‘완벽한’ 1급수다. 우리나라 영남지역의 상수원수를 공급하는 안동댐의 2006년 연평균 BOD 농도는 1.2㎎/L, 중부권의 상수원수를 공급하는 대청댐의 경우 0.8㎎/L 그리고 남서부 지역의 상수원수를 공급하는 주암호의 경우 1.2㎎/L로 각각 나타났다.

필자가 환경부 수질보전국장으로 재직하던 때의 팔당호의 연평균 BOD 농도는 1.5㎎/L 수준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것은 BOD에 관한 한 상수원수로서 문제가 없는 수질이었다. 그러나 하천과 호소 등 수질항목은 BOD 외에도 수십 가지가 있다. BOD 기준을 만족한다고 반드시 ‘좋은 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수질항목도 좋아야 한다. 질소나 인, 병원성 미생물, 중금속, 유독물질 등과 같은 항목이다.

필자는 1997년 한 TV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나라 수질 중 에 관한 한 생활하수, 공장폐수, 그리고 축산폐수 등 통제가 상대적으로 쉬운 점오염원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만 확실히 처리하면 수질문제의 상당부분이 해결될 것입니다. 나는 그 시기를 길게 잡아 지금부터 10년 정도로 생각합니다.”

현재 생활하수는 80% 정도를 처리하고, 공장폐수는 100%를 처리하고 있다. 다만, 영세축산농가에서 발생하는 축산분뇨의 처리가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BOD에 관한 총량관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4대강 주요 상수원의 BOD 수질목표를 1.0㎎/L로 설정하고 일차적으로 10조 원 이상을 투입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전국 주요 상수원의 수질이 BOD에 관한 한 지금의 수질로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질개선을 위한 더 이상의 투자로 수질을 ‘BOD 1급수’로 만드는 것은 귀중한 국가재원의 낭비가 될 수 있다. 다만, 추가적인 상류지역의 개발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수질오염물질 총량관리가 필요하다.

새로운 개발에 의해 오염물질 배출량이 늘어날 경우 기존의 다른 점오염원이나 비점오염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오염물질과 상계하도록 하는 것이다. ‘BOD 1급수(1.0㎎/L 이하)’에 대해서는 이제 국민들도 그 인식을 바꾸고, 이를 달성하려는 정부는 그 집착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수질환경기준은 197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28년이 지난 현재까지 크게 고쳐진 것이 없다. 그 동안 새로운 물질의 도입, 사용으로 수질오염물질의 종류와 양이 많아졌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질항목이 거의 추가되지 않았다는 것은 실제로 새로운 오염물질이 상수원수의 수질을 위협할 만큼 환경에 배출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BOD 위주의 수질관리정책 때문이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수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BOD에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환경부 수질보전국장으로 재직할 때 하천이나 호소의 ‘BOD 1급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외부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내부적인 검토를 했으나 결론은 국민의 인식의 벽을 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BOD 수질기준을 완화하고 질소나 인과 같은 다른 항목을 부각시키면 ‘정부가 1급수 만들기 정책을 포기하고 국민을 속인다’는 말이 나올 것이 불을 보듯 확실하고,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정부로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28년만에 조금 바뀐 국민 의식

우리나라 수질보전정책은 그러한 국민인식 때문에 10년 이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며 귀중한 국가재원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에 ‘BOD 1급수’에 대한 인식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수질보전정책 역사에서 조그만, 그러나 상당한 의미를 가진 변화가 있었다. 28년 간 사용하던 수질환경기준의 외모를 바꾼 것이다.

수질보전정책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던 ‘BOD 1급수’ 기준을 살짝 바꾼 것이다. ‘1급수는 BOD 1.0㎎/L 이하’라는 지금까지의 기준을 ‘1a급수는 1.0㎎/L 이하, 1b급수는 2.0㎎/L 이하’라고 고친 것이다. 이것은 좀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수질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식의 ‘얄팍한 잔재주’를 부렸다가는 대중매체와 환경운동단체들의 뭇매를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별 소리 없이 일이 잘 되었다. 물론 정부가 이들을 잘 설득시킨 탓도 있지만 국민들의 인식변화가 없이는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 한 번 되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새로운 수질기준이 인식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팔당호의 BOD 수질을 1.0㎎/L 이하로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국가재원의 낭비가 되기 쉽다. 세상의 모든 수질전문가에 물어 보라, BOD 1.0㎎/L와 1.2㎎/L 차이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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