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보다 ‘규제합리화’가 바람직
한국, 규제개혁을 ‘규제철폐’로 동일시하는 경향 많아


▲ 김동욱 교수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이 정부의 명칭이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등이다.

이런 이름의 정부들이 내 건 슬로건은 규제개혁, 부패척결, 혁신 등 대부분 비슷하다. 그 의미는 “전 정권이 한 일이 옳지 않기 때문에 모두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가 애용해온 단어다. 이런 구호의 밑바탕에는 규제는 불필요하거나 나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규제는 좋은 것

‘규제’라는 말의 사전적 풀이는 “어떤 규칙을 정하여 제한함”이라고 되어 있다. 영어로는 ‘regulation’, ‘control’ 등으로 되어 있고, 교통규칙(traffic regulation), 교통규제(traffic control), 자율규제(self-control) 등으로 사용된다. regulation과 control의 다른 명사형인 regulator와 controller는 조정자, 단속자, 조정기, 조절기, 시간조절장치, 선거감시위원, 관리인, 항공관제관, 전차의 제동기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규제란 자연생태계와 인간사회의 유지, 발전에 필수적인 기본원리다. 자연생태계에서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의 상호 규제 기능이 사라지면 그 생태계는 파괴되고 만다. 교통규제가 없으면 도로에는 차량이 다닐 수 없고,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를 규제하지 않으면 생물도, 사람도 사용할 물이 없게 된다.

자동차는 제동기가 없으면 자동차일 수 없고 인간의 신체에 온도조절장치(thermostat)가 없으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게 된다. 규제란 원래 나쁜 것이 아닌 좋은 것, 필수적인 것이다.

규제개혁과 규제합리화

자연에 의한 규제와는 달리 인간이 만든 인간사회에 대한 규제는 불필요한 것, 과도한 것 등 비합리적인 규제가 있을 수 있다. 비합리적인 규제는 자연자원 및 인공자원의 비효율적인 사용을 초래하여 인간사회의 유지, 발전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관료조직이 커지고 전문화함에 따라 불필요한 규제, 과도한 규제가 발생하여 어느 새 “규제란 나쁜 것이다”라는 인식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규제와 관련하여 개혁, 혁신, 혁파, 혁명 등의 용어가 사용된다. 개혁은 정치체제나 사회제도 등을 합법적, 점진적으로 고쳐나가는 것이고, 혁신은 제도나 방법, 조직이나 풍습 따위를 고치거나 버리고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혁파(革罷)는 낡아서 못쓰게 된 것을 버리는 것이고, 혁명(革命)은 국가나 사회의 조직, 형태를 급격하게 바꾸는 것을 말한다. 개혁(改革)보다는 혁신(革新)이 과격하고 혁신보다는 혁명이 더 과격하다.

▲ 상수원보호구역 경계선 10m 안에 있는 소규모 공장의 설치를 금지하면서 그 10m 밖에 있는 대규모 공장의 설치를 허용하는 것은 상수원수 수질의 보호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분명히 비합리적인 규제라고 할 수 있다.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겉보기 속도는 느리지만 실재로 가장 빠른 것이 개혁이다. 혁명적 변화가 가장 속도가 빠른 것 같지만 겉만 변하고 속은 그렇게 빨리 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너무 커서 결과적으로는 체제가 아주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공산혁명이 일거에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선 것 같이 보였지만 러시아나 동구국가들과 같이 반세기 이상의 먼 길을 돌아 결국 자본주의체제로 회귀하고 말았다. 러시아와 같은 거대한 국토를 가진 자원부국이 이제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게 된 것을 보면 혁명이 얼마나 무모한 변화수단인지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불필요한 규제, 과도한 규제를 합법적, 점진적으로 고쳐나간다는 것을 뜻하는 규제개혁이 현 정부가 지향하는 변화방식을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규제개혁에 대한 인식을 보면 규제개혁을 ‘규제철폐’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부처의 종전의 규제가 총 0000건이었는데 이번 규제개혁 결과 000건, 00%를 폐지했다” 이것은 사전에 “규제 00% 줄이기”라는 목표 아닌 목표를 정해놓고 꿰어 맞춘 결과다. 수치 놀음에 급급하다 보니 동일한 규제를 분리하여 2건으로 만들기도 하고 유사한 규제를 합쳐 당초 대상 규제의 수를 줄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규제개혁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 규제개혁이라는 명칭을 바꾸어 ‘규제합리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규제합리화의 의미는 불필요한 규제, 과도한 규제는 합리적이 아니므로 당연히 버리거나 규제의 방법과 정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합리화는 규제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 규제개혁의 형식적인 건수 기준이 아닌 실질적인 내용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겉보기 규제개혁과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다.

환경행정의 특성은 규제

산업사회 이후의 급격한 인구증가와 생산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산 및 소비활동 영역을 크게 확장시켜 환경오염과 환경파괴가 지구생태계가 감내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 전망을 어둡게 함은 물론 인류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환경오염과 환경파괴 행위를 규제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존터전인 환경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인간은 자연정복과 개발본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모든 행동이 환경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환경보전 노력은 이러한 본능을 제어하는 것이므로 그 본질이 규제적이다.

환경보전을 기준으로 할 때 정부 각부의 구성은 환경에 무관심하거나 개발 지향적인 부처가 압도적으로 많다. 국토해양부나 지식경제부는 말할 것도 없고 환경부를 제외한 다른 부처도 개발지향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환경보전에 관한 한 환경부가 정부 내에서는 유일한 ‘야당’이다. 개발하고 진흥하는 성격을 가진 부처의 일은 규제보다는 조장, 개발하는 부분이 훨씬 크고 예산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베푸는’ 행정을 함으로써 정부의 윗사람이나 국민에게 인기가 좋다.
환경부의 일은 대부분 규제적 성격을 가진데다 베푸는 부분도 규제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예산지원을 받는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에게 환경부의 돈은 인기가 없다. 환경부의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나지 않게 해야 하는 까닭에 환경부 공무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우리나라 환경이 이만큼 유지, 개선된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채 우리나라 환경보전을 소리 나는 시민단체의 환경운동 등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이러다 보니 역대 장관 임명권자들은 환경부장관 자리를 ‘아무나 하면 되는 자리’로 생각하고 ‘남녀 성비 맞추기’, ‘힘센 부처 사람 밀어 넣기’, ‘운동권 입 막기’, ‘논공행상’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그 결과 환경부가 중앙행정기관으로 발족한 이래 28년 간 환경부 전문 관료 출신의 장관은 순수한 의미에서 한 명도 없는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외국 환경규제, 우리보다 철저

외국의 환경보전을 위한 규제는 단순비교로 우리나라보다 규제 숫자도 많고 규제 내용이 더욱 철저하다. 가장 전형적인 환경규제 중의 하나인 공장설치 허가과정에 대해 우리나라와 미국의 예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해당 공장의 종류별, 규모별로 설정되어 있는 배출허용기준에 맞출 수 있도록 방지시설만 설치하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미국의 배출시설 설치허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까다롭다. 공장 설치를 원하는 자가 배출시설 설치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 없지만 그 다음부터 매우 합리적이고 철저한 절차가 진행된다.

신청서에 근거하여 기술근거 배출허용기준과 수질근거 배출허용기준을 산정한 다음 그 중 더 엄격한 기준을 허가조건 배출허용기준으로 부과한다. 다음은 오염물질별 사후감시 및 보고조건을 결정하며 시설특유의 특별조건과 모든 시설공통의 표준조건을 부과한다.

뿐만 아니라 계절적 변화와 기타 적용 가능한 규제사항을 추가하고 사실조사서 등을 첨부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허가요건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별도의 조건을 부과한다. 영국이나 캐나다, 호주, EU국가 등도 대부분의 오염물질에 대해 총량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공장과 같은 배출시설에 대해서는 미국의 예와 비슷한 절차를 거친다.

또한 미국의 환경감시조직은 매우 방대하다. 환경보호청 본부에는 환경감시실장 밑에 법령준수지원국, 형사법집행국, 정부담당국, 환경단속국 및 유해폐기물국이 있다. 10개 지역환경청에는 환경보호국을 설치하여 환경감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 본부와 10개 지방환경청의 환경감시 관련 인력은 1만8천 명이며 2002년 예산은 80억 달러였다.

우리나라 환경규제의 합리화

우리나라는 환경보전과 직접 관련된 환경법으로 40개의 단행법을 가지고 있다. 각 법령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거의 모두 규제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고 재정지원이나 기술지원, 교육지원과 같은 지원의 경우에도 모두 환경규제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로 한정되어 있다.

▲ 환경부는 수돗물 병물 판매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수돗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상당히 과학화되어 수돗물 병물과 같은 이슈에 대해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지금은 수돗물 병물 허용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환경법 내용의 대부분이 이와 같이 규제적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그 규제가 불필요하거나 과도하여 비합리적이고 자원 낭비적이라는데 있다. 예를 들어, 상수원보호구역 경계선 10m 안에 있는 소규모 공장의 설치를 금지하면서 그 10m 밖에 있는 대규모 공장의 설치를 허용하는 것은 상수원수 수질의 보호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분명히 비합리적인 규제라고 할 수 있다.

 10만㎡의 호소 주변 개발 가능 지역에 대해 3천㎡ 이하 면적의 개발에 대해서는 별도 제한이 없으나 9만㎡ 이상의 면적에 대해서는 사전환경성검토 등의 제한이 가해질 경우 수십 개의 3천㎡ 짜리 난개발을 초래하여 오히려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규제라고 할 수 있다.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거나 철폐하기 위해서는 환경성 검토는 물론, 경제성 검토와 기술성 검토 등이 수반되어야 함으로 행정적으로는 많은 자료와 전문지식 및 전문가의 판단,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환경행정 28년이 지나 기술수준과 재원규모에서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지금까지도 옛날 방식의 비과학적인 규제수단과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 가지 더 예를 든다면 수돗물로 먹는 샘물을 생산하는 문제다. 깨끗하고 안전한 수돗물을  병에 넣어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수돗물 병물 판매 문제에 대해 환경부는 지금까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그것은 수돗물의 수질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수돗물에 대한 시민의 ‘부정적 인식의 심화’나 ‘정부의 수돗물 정책의 포기’와 같은 비과학적이기는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사회적인 인식 때문이었다.

지금은 수돗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상당히 과학화되어 수돗물 병물과 같은 이슈에 대해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은 환경부가 수돗물 병물 허용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등 선진외국의 환경규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환경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규제는 자연계와 인간사회의 유지, 존속에 필수불가결한 장치다.

자연의 규제 장치는 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완벽하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인간사회의 규제 장치는 이해집단 간의 다툼으로 불필요한 것이 끼어 들고 규제의 정도가 지나쳐 인간사회의 존속과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규제 자체가 아니라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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