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7주년 특집] Ⅲ. 초순수 생산기술 국산화·상용화 시급하다


“‘공급·수요기업 상생형 R&D’로 초순수 기술 확보 필요”

국내 초순수 기술, 분산된 형태로 개발 진행돼 경쟁력 취약…수입 다변화도 무리
한국초순수학회, 초순수 기술 국산화 위한 허브로서 산·학·연·관 협력 도모해야


▲ 이 상 호
국민대학교 건설시스템공학부 교수
Part 02. 초순수 기술 분야의 도전과 전망

수처리 기술의 난이도는 첫째, 원수 처리의 난이도, 둘째, 생산수 제조의 난이도,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미래에 필요한 수처리 기술은 좀 더 처리하기 어려운 원수를 처리하는 기술, 그리고 좀 더 만들기 어려운 생산수를 만드는 기술이다. 원수 처리 기술은 그간 셰일가스 폐수처리, 해수담수화 및 물재이용 등 분야 기술개발 연구가 진행돼 왔다.

이러한 가운데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말 만들기 어려운 생산수를 만드는 기술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며, 그러한 기술이 초순수(Ultrapure water) 기술이다. 따라서 새로운 분야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과거에 개발된 모든 기술을 포괄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즉, 초순수 기술은 수처리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서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단계에 있는 기술이다.

초순수 기술은 단순히 물을 처리하는 기술이 아니고 처리한 물 자체가 (단위)공정의 원재료로써 사용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 의학이나 디스플레이, 화력발전, 반도체 산업 각각의 분야에 다양한 초순수 기술이 있고, 그 중에서도 반도체 분야에서 요구하는 초순수 수질이 가장 까다로우므로 반도체용 초순수를 생산할 수 있으면 다른 어떤 초순수 기술도 비교적 용이하게 생산 가능하다.

 
기술 집약된 시스템 엔지니어링 기술

초순수 기술은 크게 네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설계·시공기술 뿐만 아니라 운영·유지관리·분석 기술이 모두 집약된 시스템 엔지니어링(System Engineering) 기술이다. 따라서 모든 요소들이 각 부분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절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정교한 시스템 기술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어떤 좋은 단위공정을 만든다 하더라도 설계 단계에서 이를 고려해주지 않으면 이 단위공정은 절대 초순수 시스템에 사용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도 잘 운영하지 못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각 부문 기술이 종합적으로 개발돼야 하고 한두 업체가 이 기술들을 다 독점할 수 없으며 많은 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팀으로 운영돼야 한다.

 
둘째는 사용자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기술(User-Specific technology)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반도체 제조공정은 웨이퍼 제조,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한 전공정, 패키징을 포함한 후공정 등 종류가 다양하며, 이에 따라 초순수 수질기준이 모두 다르다. 게다가 같은 공정이라고 해도 기업마다 요구하는 스펙이 제각각이다. 따라서 실제 초순수 제조공정은 생산수 수질목표와 반도체 집적도, 반도체 제조공정 종류, 기업의 수요 등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

 
초순수 기술, 신뢰성 공학에 기반

셋째는 시장상황에 따라 목표 또한 계속해서 변화하는(Moving Target) 기술이라는 것이다. 만약 일정한 수질기준을 충족하는 기술을 약 5년을 투자해 개발했다고 가정할 때, 개발 착수 시점부터 5년 후의 수질기준은 훨씬 더 높아져 있기 때문에 5년 후 현재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높아질 기준을 예상해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반도체 분야에서는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있다. 반도체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집적회로는 점점 소형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조기술의 난이도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반도체 제조과정의 불량률을 줄이기 위한 초순수 기준이 강화되고 있어 이를 대비한 선제적인 투자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초순수 기술이 기존 수처리와 가장 다른 특징은 일종의 신뢰성 공학(Reliability Engineering)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기존 수처리 기술은 설정된 수질목표를 달성하면 성공이지만, 실제 초순수 기술은 수질목표를 달성한 상황에서 얼마만큼의 위험성이 존재하는지 예측한 후 그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정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 초순수 공정은 메이크업(Makeup) 공정과 1차 순수처리, 2차 순수처리 등을 거쳐 계속해서 반복되는 공정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공정의 신뢰성을 원하는 수준까지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초순수 생산 위한 장비 국산화율 저조

한편, 최근 초순수 기술 동향을 살펴보면 입자성 물질의 분석과 제거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칩의 집적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또, AMC(Airborne molecular contaminant)와 같은 새로운 오염원에 대한 검토 비중이 확대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물부족 문제가 심화함에 따라 물재이용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수요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과제라고 볼 수 있으며,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수요처의 요구수질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을 지속해서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 고효율 소재 및 부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노력을 지속해야 하며, 특히 고장 진단과 조기 경보를 위한 AI 기술 개발이 유망하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반도체 강국이지만, 실제 반도체 산업 기반은 다소 취약한 편이다. 공정 설계(process design)와 후공정(Back End)에 약하고, 특히 반도체 생산을 위한 장비, 원재료와 소재의 국산화율도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초순수 또한 반도체 생산을 위한 장비의 일종이다.

현재 세계 초순수 기술 분야 시장 현황을 살펴보면 각 분야별 생태계에서 다양한 기업들이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주요 기업으로는 에코랩(Ecolab Inc.), 듀폰(Dupont de Nemours Inc.), 수에즈(Suez SA), 다나허(Danaher Corp.),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 오비보(Ovivo Inc.), 아사히 카세이(Asahi Kasei Corp.), 펜테어(Pentair Plc), 오르가노(Organo Corp.), 베올리아 환경(Veolia Environment SA.) 등이 있다.

국내 초순수 생산설비, 현장 적용 미흡

국내 초순수 기술 시장 현황을 살펴보면, 1단계 메이크업(Makeup)부터 국산화가 진행돼 2단계 프라이머리(Primary), 3단계 폴리쉬(Polish) 공정도 부분적으로 국산화를 추진 중이지만, 설계 분야에서는 일본의 쿠리타(Kurita)와 노무라(Nomura) 등이 국내시장을 100% 점유하고 있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시장에서도 일본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유럽 등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부분적으로 국산화된 제품이 존재하나 실제 사용률은 저조한 편이다. 시공·운영 면에서도 프랑스 베올리아(Veolia), 일본 쿠리타와 같은 초다국적 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은 일부 참여에 그치는 실정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관련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해 초순수 생산설비를 개발했지만 정작 현장에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밖에 초순수 관련 국내 지적재산권(IP) 경쟁력 또한 취약한 형편이다. 국가별 특허 점유율을 보면 일본의 특허 점유율이 56%로 상대적으로 높고, 이어 미국(16.8%), PCT(Patent Cooperation Treaty) 국제출원(12.9%), 유럽(5.1%) 순이며, 한국은 4.9%에 불과하다. 공정별 특허 개수 또한, 이온교환수지(IE), 자외선(UV), 역삼투압(RO), 한외여과(UF), 전기탈이온(EDI) 전 공정에 걸쳐 국내 특허 점유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산·학·연·관 협력 네트워크 구축 필요

따라서 현재 국내 초순수 기술은 기술력이 아예 없는 상태는 아니나, 하나로 엮이지 못하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 경쟁력이 취약하다고 진단할 수 있다. 수입 다변화 관점에서도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수입처를 다변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2019년 8월 제시된 우리나라 소부장 전략 중 ‘유형-4’에 해당하는 ‘공급·수요기업 상생형 R&D’를 추진해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국가 산업에 중요한 핵심품목의 대외의존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원천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사이를 연결해 기술적 수준을 극복하고 시장 내 수요기업의 R&D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환경부에서 진행 중인 국책과제도 결국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하게 된 것이다.

 
오늘 출범한 한국초순수학회는 이제 국내 초순수 기술의 도약을 위한 일종의 기술 허브(Hub)로서, 단순히 학술활동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기업을 지원하고 관련 정보를 계속해서 공유·확산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산·학·연·관 네트워크를 구축해 모든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제협력을 통해 국내기업의 해외진출 판로를 개척하는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상당한 양의 금광이 발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서부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금을 캐 부자가 된 사람보다 이들에게 잘 해지지 않는 튼튼한 청바지를 판매한 사업가들은 큰 부를 거머쥐었다. 지금도 유명한 미국의 L청바지 브랜드는 미국 골드러쉬에서 가장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우리나라 초순수 기술 국산화 역시 반도체 산업을 위해 시작하는 일이지만 초순수 기술이 모든 수처리·물제조 기술의 정점에 있는 기술인 만큼 반도체 산업의 일부가 아닌 우리나라 물산업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도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워터저널』 2021년 12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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